“이따구로 밖에 못 합니까. 시장님도 30년 된 차 안 탄다 아입니까. 시장님, 안 불안합니까? 다 치아뿌고 새 거 만듭시다 새 거. 저도 남은 인생 갑상선암 안 걸리고 살고 싶은 마음이다 이겁니다.” 최양식 경주시장이 나아리 이주대책위원회(이주대책위)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지난 20일 오후, 나아리 주민 김승환(58)씨가 책상을 치며 언성을 높였다. 최 시장에게 삿대질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나아리는 월성 원전(월성1·2·3·4호기, 신월성1·2호기)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가깝게는 원전에서 915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산다. 원전에서 직선거리 914m까지는 제한구역이다. 하지만 말만 ‘제한구역’이지 실제 이동을 통제하지는 않는다. 제한구역 이내의 거주만 통제한다. 이주대책위 천막농성장이 위치한 곳도 제한구역 이내다. 심지어 공원으로 꾸며진 제한구역에서 캠핑을 하는 관광객도 볼 수 있었다. 

이주대책위는 이 지역 토박이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거나 20~30년 이상 거주한 이들이다. 이 중에는 자녀가 한수원에 다니는 이들도 있다. 자녀가 한수원에 근무한다는 한 부부는 “자식 일은 자식일이고 부모는 또 살아야하지 않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이들이 뒤늦게 대책위까지 꾸린 데에는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생계, 건강에 대한 우려, 경주시에 대한 배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 월성 원전 인근 제한구역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온 동네가 암 환자, 무서운 동네”

무엇보다 와 닿는 건 건강문제다. 아픈 사람이 많냐고 묻자 주민들은 “암 환자 천지”라며 “무서운 동네”라고 말을 쏟아냈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 중심가를 한 바퀴 돌았다. 중심가라고 해도 걸어서 채 10분이 안 되는 거리다. 마을 중심가는 원전 제한구역인 914m가 끝나는 위치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을 췌장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이정자(76) 할머니는 마을 곳곳을 손짓하며 ‘암’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저기 돼지국밥집은 간암이고 나아카페 아저씨는 위암 걸렸제. 카페 뒤에 당구장 보이제? 거기 아저씨는 대장암이고 아들도 대장암이라 카대. 다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 (당구장 옆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는 딸내미가 서른다섯인가 밖에 안 됐는데 갑상선암이고. 바로 앞에 마트 아들은 백혈병으로 죽었어요. 마트 건너편 이발소도 암이고 그 옆에 세븐마트 아줌마도 유방암, 그 옆 소주방은 갑상선암…”

이 중 원전과의 상관관계를 인정받은 건 갑상선암 뿐이다. 부산동부지원 민사2부(최호식 부장판사)는 지난 해 10월 고리원전 인근에서 20여년을 살다 갑상선암에 걸린 박금선씨(49)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박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재판부는 원전 주변지역(5km) 이내에 거주하는 여성의 경우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거리(30km) 거주 여성보다 2.5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월성원전이 위치한 나아리와 인근 마을에도 갑상선 질환을 앓는 이들이 많다.  자매 3명 모두 갑상선 질환에 걸린 경우도 있다. 현재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한수원을 상대로 갑상선암 집단 소송에 참가하고 있는 월성원전 인근 주민은 83명이며 나아리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20가구 가운데 갑상선암은 11명, 갑상선 질환은 4명이다. 이씨는 “암 걸려도 쉬쉬하고 말 안 해. 어데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그라니껴”라고 말했다. 아픈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 갑상선암을 진단받은 나아리 주민 황분희씨가 지진 해일 재난 대피 안내판을 보며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아가씨 같으면 여기 와서 살겠어요?”

나아리 30년 토박이 황분희(68)씨도 지난 2012년께 갑상선암을 진단받았고 소송인단 중 한 명이다. “암 진단을 받고도 원전 때문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갑상선암이 아무리 흔한 암이라고 해도 우리 집에는 암 환자가 없거든요.” 황씨는 가족력이 없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고리원전 갑상선암 승소 소식을 보고 알게 됐다. 황씨는 평생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가 소송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 때문이 아니다. 소송에서 승소하면 혹여나 이주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그는 4살, 10살 먹은 손자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애들이 제일 불안해요. 걔들을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나갈 수가 없으니. 당장 애들한테 결과가 나오면 한수원에 가서 따지기라도 하겠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10년 20년 후에 병이 오는 건데.”

황씨가 손자들과 함께 사는 집은 원전에서 직선거리로 1km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집을 나서면 원전 돔이 보인다. “시내 사람들은 그래요. 설마 후쿠시마처럼 되겠나. 우리는 어떤지 알아예? 후쿠시마처럼 안 되라는 법 있나 이거에요. 아가씨 같으면 여기 와서 살겠어요? 지진이라도 오는 날이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니까요.” 황씨는 지난 해 9월 발생한 3.5규모의 지진을 겪고 난 다음 더 심하게 불안을 느낀다. 

실제 경주는 지진이 잦은 지역이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해당 마을 인근에서 1991부터 2000년까지 9회,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2회,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14회 지진이 발생했다. 게다가 월성은 후쿠시마처럼 노후원전을 가지고 있다. 월성 1호기다. 후쿠시마에서 쓰나미를 겪은 10개 원전 가운데 나이가 많은 1·2·3·4호기가 순서대로 폭발했다. 모두 30년이 넘은 노후원전이었다. 

   
▲ 영업을 하지 않는 나아리 상가들. 주민들에 따르면 오른쪽 카페 주인은 위암을 진단받았고 왼쪽 건물 2층 당구장 부자는 대장암을 진단받았다. 사진= 이하늬 기자
 

“먹고 살 수라도 있으면 이렇게 안 하죠”

또 다른 문제는 생계다. “막말로 살 수만 있어도 이주까지는 요구 안 해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다 아프제. 가게 장사도 안되제. 지역 발전 기금은 경주시가 다 가져가제. 우리가 여기 살 이유가 없다 아닙니까.” 원전 직선거리 915m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이진곤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씨 부부는 원전이 막 지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에 나아리로 들어왔다. “월성에 가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때였다. 

나아리에는 이씨 부부 같은 사람들이 많다. 원전 건설 경기로 돈을 번 이들이다. 월성에는 월성 1호기부터 신월성 2호기까지 끊임없이 원전이 지어졌다. 하지만 신월성 2호기 건설이 끝난 2012년 이후 건설경기는 사라졌고 후쿠시마 사고의 불안감으로 이제는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도 없다. 주민들은 “자고 일어나면 뉴스 터지는데 누가 오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만 오지”라고 말했다. 

실제 마을에는 문 닫은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마을 중심가에 위치한 한 건물은 아예 통째로 비어 있었다. 임대한다는 현수막은 빛에 바래 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씨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과 찜질방도 2013년 문을 닫았다. 포털 사이트에 자동완성 검색어가 뜰만큼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곳이었다. “한평생 이렇게 꾸며놨는데 우리라고 이사 가고 싶겠어요?” 이씨 부부가 가게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을 중심가에서 소줏집을 운영하는 박옥주(61)씨도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이 동네가 예전에는 건설 인부들 상대로 토스트만 구워 팔아도 먹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안 와요. 저도 암 걸리고 가게 장사도 안 되고 지금대로라면 여기서 살 수가 없는거잖아요.” 2011년 갑상선암을 진단받은 박씨는 “목이 아프다”며 수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박씨와 대화를 나눈 금요일 저녁, 40분 동안 소줏집을 찾는 이는 없었다. 

   
▲ 나아리 이주대책위 주민들이 지난 20일 대책위 농성장을 찾은 최양식 경주시장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곰은 재주가 부리고 돈은 경주시가”

원전이 들어서게 되면 한수원은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지원금’을 지원한다. 지역발전기금 혹은 마을발전기금, 원전 지원금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월성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그리고 방폐장까지. 나아리 주민들은 소위 ‘혐오시설’을 끼고 산다. 그만큼 받은 지원금도 많다. 가령 최근 논란이 된 방폐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에 따른 특별지원금은 3000억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이 돈을 지역 주민들이 나눠서 갖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지역 주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방폐장이 들어선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 주민들은 3000억 원을 N분의 1로 나눠 갖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 동경주 지역 전반에 배정된 금액은 550억이며 이는 대부분 지역사업에 들어간다. 봉길리 주민들은 현재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반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원전이 들어서고 주민들은 어떤 혜택을 받았을까. “지역발전기금이라고 해서 해수온천 지은 게 전부에요. 보통 사람들 온천 입장료 6천원 받는 거 원전 주민들한테 4천원 받는 그거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와예.” 박옥주씨의 말이다. 다른 주민들 역시 “1원 한 푼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지역발전기금은 방제 등 안전 문제에 쓰여야 하는데 지자체 일반사업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도로를 새로 닦거나 지자체 관공서 확장 등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나아리 주민들이 최양식 경주시장에게 “이 따위로밖에 못 합니까”라고 호통 친 이유가 여기 있다. 그 날 최 시장에게 언성을 높인 김승환씨는 기자에게 “그 동안에 우리 많이 속았다 아입니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때놈이 돈 먹듯이 원전은 우리가 이고 살고 돈은 경주시가 다 가져가고. 이제 그만하자 이겁니다. 우리도 생명 단축되더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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