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상을 뺏어간 사람들에 대한 굉장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동네마다 하나 둘씩 있는 평상은 지친 다리를 쉬어가는 데도 좋지만 동네 사람들의 사교 공간으로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물론 그리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평상은 점점 사라져갔다.

낮에는 평상을 제 것처럼 차지하고 있는 어떤 무리도 있었지만 결국 평상에 살림을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장처럼 평상에 대한 우선권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이 기어이 떠나고 나면 아이들도 모여서 놀기도 하고 여름철엔 숙제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좀 머리 굵은 아이들은 첫사랑의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녁 해가 기울어지면 평상의 손님들도 바뀌어 막걸리 한 잔 걸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들, 삼선 쓰레빠를 신은 백수 청년들이 새우깡에 소주 한 병 돌려 마시면서 앞으로 우리 어떻게 사냐, 이야기하던 그 자리들은… 죄다 스타벅스가 되었다. 스타벅스가 아니면 커피빈으로, 커피빈이 아니면 카페베네로, 그것도 아니면 하다못해 조그만 동네 카페로. 한 마디로 동네에서의 사교조차 일정량의 자본을 들이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해진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러다 도서관에 가는 길, 말끔하게 자리하고 있는 평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교차로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새단장을 하면서 시대에 반하는 평상을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평상의 정석대로 반질반질한 장판을 깔아 정갈하게 꾸민 평상은 크기 역시 여느 집 골방 정도 크기, 그러니까 두어 사람으로 이루어진 두 무리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모범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보니 구멍가게에서 산 음료수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가 그새 평상에 앉아 있었다. 평상 옆에 벗어 놓은 신발을 보니 세상의 평상들이 천천히 줄을 지어 돌아오고 있는 것만 같아 와락 반가웠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그 많은 평상들은 어디로 갔나, 하나씩 줄을 지어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 사이로 돌아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야기를 나누던 무리들은 곧 평상을 떠났지만, 나는 평상을 와락 안아 주고 싶었다. 얼마만에 만났니 평상아, 참 반갑다 평상아. 언제 모깃불을 켜고 천안막걸리라도 한 잔 따라 놓은 채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하는 것들을 바라봐야겠다. 그것이야말로 평상의 진짜 용도니까.

넉넉한 삶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얼마나 많은 평상들이 좌절한 꿈들과 부패해 버린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고백의 현장이 되었을까. 이제 평상 하나가 돌아왔으니 나부터 먼저 고백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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