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생생하다. 2014년 4월16일. ‘여객선 한 척, 침몰 중’이라는 속보. 곧장 내달려 찾은 진도 팽목항. 정부와 언론의 ‘전원 구조’ 발표. 이와는 정반대 상황을 전하는 휴대폰 너머의 현지 어민. 생존자 250명이 탔다는 배에서 80명이 내렸을 때 엄습한 불안감. 그때도 여전히 울려 퍼지던 ‘전원 구조’ 발표. 

1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세월호를 잊으라”고 말한다. 맞다. 잊고 싶다. 희생자 304명도 이제 좀 편히 쉴 때가 됐다. 그런데 잊을 수가 없다. 희생자 304명 중 9명(실종자)은 아직 별이 되지 못했다. 세월호는 그 9명을 품은 채 여태껏 바다 깊이 잠겨 있다. 희생자 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는지’ 묻고 있다.

해답은 간단하다. 세월호를 인양하면 된다.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유일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증거인 세월호를 끌어 올려 실종자 9명을 수습하고, 희생자 가족들의 의문에 답을 내리면 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 나가면 된다.

하지만 이 나라는 1년을 허비했다. 그 동안 정부는 웃음거리가 되고 만 '해경 해체' 말곤 딱히 한 게 없다. 최근 청와대 정무특보로 불려 간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겨우 모양새를 갖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세금 도둑’, ‘탐욕의 결정체’로 취급했다. 정부는 특별조사위원들에게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 하나만 던져주곤, 직제·예산 등이 담긴 위원회의 계획안엔 묵묵부답이다.

그나마 특별법이라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희생자 가족들의 노력 덕분이다. 팽목항, 광화문, 국회, 청와대, 청운동사무소…. 혹서·혹한을 무릅쓴 1년 여의 노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몫이 아닌, 생명과 재산을 잃은 희생자 가족들의 몫이었다.

지난해 여름,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에 들러, 다시 대전까지 '800km 도보순례'를 한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그는 여전히 거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 2월 23일, 그는 딸 아름씨와 함께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500km 삼보일배’에 나섰다. 

삼보일배 20일째 되던 날인 3월 14일. 전남 영암 인근을 지나던 이씨를 만났다. 지난해 도보순례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이씨는 최근 교황이 던진 “세월호 어떻게 해결됐나요”라는 질문에 답했다. “교황님, 기억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교황님이 다녀간 이후,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실종자 조은화(단원고)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대뜸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기자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1년. 희생자들이 안식을 취하고도 남을, 희생자 가족들이 일상을 찾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잊는 것 또한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한 추모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를 빨리 잊고 싶다. 

하지만 아직 그래선 안 될 것 같다. ‘잘’ 잊을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다. 희생자 가족들이 여전히 거리에 남아있는 한,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을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한,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잊어선 안 된다.

   

▲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3월16일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실종자 허다윤(단원고)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는 방파제에 걸린 딸의 사진에 얼굴을 묻고 목이 메일 때까지 울었다. 딸의 이름을 부르다 쓰러진 박씨는, 다음날 청운동사무소 앞 기자회견에서 다시 오열하다 병원에 실려 갔다.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우는 게 참 힘들다는 걸.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함께 울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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