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세계일보 사옥 앞에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검찰이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한다는 입말이 일파만파 퍼졌다. 영장 발부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취재진은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세계일보도 압수수색에 대비해 긴장 태세를 유지해야 했다. 

이후 청와대가 해당 기사를 쓴 조현일 기자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검찰 수사는 조 기자와 그의 ‘취재원’ 신원 파악에 맞춰졌다. 검찰은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위치추척 자료 등을 뒤졌으나 조 기자는 끝내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이 파동은 언론 자유와 관련해 고민거리를 던졌다.

이런 국면에서 기자의 취재권 보장을 위한 법안이 발의될 예정이다. 대표 선수로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나섰다. 이른바 ‘취재원 보호법’이다. 지난 20일 배 의원을 국회에서 만났다.

   
▲ 지난해 12월 검찰이 청와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지자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세계일보 사옥 앞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세계일보 사옥 정문에 진입을 차단하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배 의원은 “언론의 자유와 직업윤리에 반해 취재원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며 “세계일보를 검찰이 압수수색한다고 알려져 논란이 됐는데, 지금이라도 취재원 보호와 관련한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1987년 폐지된 ‘언론기본법’에 취재원 보호 관련 조항이 있었다. 이 법률은 언론의 검열과 등록취소를 규정한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었고 폐지됐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과 관련한 규정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으로 흡수됐지만 취재원 보호는 현재까지 입법 공백 상태다.

이 법안은 언론인이 국회나 법원에서 제보자 신원에 대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더러 사정기관의 압수수색 금지도 명문화했다. 검찰은 세계일보 사태 전까지 언론사 대상 압수수색을 네 차례(한겨레, SBS, 신동아, MBC) 시도했다. 성공한 건 1989년 한겨레 사옥 압수수색 단 한 차례뿐이다. 

<관련기사 : 언론사 압수수색, 네 차례 중 한 차례만 성공>

배 의원은 “심각한 범죄는 예외로 볼 수 있지만 법률에 의해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다는 원칙이 기자는 물론 사정기관에도 보편 인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언론 환경 전반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배 의원은 또 “김영란법이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취재원 보호법은 취재 활동을 보장하는 법”이라며 “언론사가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거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게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배 의원과의 일문일답. 

   
▲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취재원 보호법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취재원 보호법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언론의 자유와 직업윤리에 반해 취재원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제보자나 취재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금지하고 언론인의 증언에 대한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한다고 알려지면서 긴장했던 일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취재원 보호와 관련한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

-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사정기관은 문건의 진위보다는 유출자 색출에 골몰했다.
“정윤회 문건 같은 경우에는 내부 고발이 아니면 보도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청와대는 이를 찌라시로 평가절하했지만 현 권력의 현실을 드러내는 보도였다. 내부 비리를 고발하려고 해도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패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법이 제보자 안전과 기자의 자유로운 취재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공직 사회가 더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기틀이 되지 않을까.”

- 미국의 취재원 보호법도, “국가 안보에 대한 긴급하고 현실적인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적으로 취재원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취재원 보호는 어느 수준까지 보호돼야 하는가, 또는 어떤 경우에도 보호돼야 하는 가치인 건가.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법제처 등으로부터 ‘언론 보도가 1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의견을 받았는데 이 부분이 적절한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법률에 의해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다는 원칙이 기자뿐 아니라 사정기관에도 적용되면 사회 전반의 인식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 기자의 범위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35개 주에서 법률로 취재원을 보호하고 있는데, 방송이나 신문사에서 상시 근무하는 기자를 저널리스트로 한정한다. 반면, 지난 2013년 발의된 연방법안이 계류돼 있는데 여기에는 폭넓게 언론인을 규정하고 있다. 기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더 논의해 봐야 하지만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본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언론사를 “방송사업자, 신문사업자, 잡지 등 정기간행물사업자, 뉴스통신사업자 및 인터넷신문사업자”라고 밝히고 있으며, 취재원 보호법은 ‘언론사’에서 언론보도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언론인’으로 규정한다.)

   
▲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진=김도연 기자)
 

- 추측성 기사, 개인 인격을 침해하는 기사가 범람하는 현실에 비춰 봤을 때 취재원을 무작정 보호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언론 생태계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취재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마저 회피하거나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개별 기자가 윤리 의식을 제고하는 것과 법이 보호막이 돼 보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 ‘김영란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취재원 보호법에 대한 반발은 없을까.
“김영란법이 규제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취재원 보호법은 기자 활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김영란법 논란을 통해 확인된 언론 불신과 그로 인해 언론인들이 입었던 상처를 보듬는 법이 됐으면 좋겠다.(웃음)”

- 여당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 법은 큰 틀에서 언론 자유를 위한 법이다. 언론인이 취재를 자유롭게 하고, 그걸 통해 공익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입법불비였던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기 때문에 여당과의 대화와 토론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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