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나 고둥이나 다 나선다… 미용사도 아이돌도, 철딱서니 2세 재벌 회장님도 얼굴 붉힐 처지에 몰리면 모두 ‘공인으로서’ 하며 말 꺼내는 상황들 참 웃긴다.>

2년 전 썼던 ‘유명인과 공인-대체 공인은 누꼬?’ 칼럼 한 대목이다. ‘여직원들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유명 남성 미용사가 자신을 공인이라고 지칭했고, 언론은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그를 공인으로 인정한 모양새가 됐다.’고 당시 지적했다.

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연예인 서세원 씨, 그리고 그의 아내 사이의 ‘폭로전’이 가열(苛烈)하다. 그 사이에서 공인(公人)이란 우리말이 ‘터진 새우등’ 신세다. 이들은 애먼 한국어까지 끌어들이며 매일 언론을 달군다. ‘B급 관심사’에는 원래 손님(클릭)이 많이 몰리는 법이다.  

<“32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폭언을 당했다. 목을 졸랐을 때는 혀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눈알도… 살려달라고만 했다”고 했다. 서세원은 “내가 공인이고 연예인이니까 조용히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그런 아내를 집으로 데려가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서세원 씨는 코미디언 영화감독 직명(職名) 말고도 기독교 목사라는 이름도 가졌다. 이순(耳順) 즉 60세에 다가서는 나이까지 쌓았다. ‘알 만한 사람’인 그가 제 얼굴에 스스로 깍듯한 극존칭의 이름을 붙인 것이 참 익살스럽다. 코미디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이를테면 ‘공인 서세원’ 또는 ‘서세원 공인’인 셈이다. 웃음 선사하는 연예인으로서의 본능인가.

   
서세원과 서정희
ⓒ노컷뉴스
 

몇 사람의 이런 ‘공인의 오용(誤用)’이 대중매체를 물들이고 마침내 우리 언어대중 전체를 물 흐리는 결과를 몰고 온다. 또 그런 종류의 말들을 여과 없이 곧바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언론계 종사자들도, 왜 ‘공인 서세원’이 의미상 또는 관례상 웃기는 말인지 알 필요가 있다. 무심히 잠자코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까닭이다.

임금의 옷에는 이름이 있다. 곤룡포(袞龍袍)다. 용의 무늬로 장식한 이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또 아무 옷에나 이 이름을 붙일 수도 없었다. 곤(袞)자의 뜻이 ‘황제 즉 천자(天子)나 왕의 옷’이다. 게다가 천자의 상징인 용(龍)이라니. 袍는 도포 같은 남성의 옛 예복이다.

袞을 뜯어보자. 옷 의(衣)의 뚜껑과 발 사이에 공(公)자가 들어있다. 厶[사] 모양 대신 구(口) 모양이어서 헷갈리지만, 갑골문 등의 옛글자는 네모다. 역사 흐르며 그 네모가 厶자 모양으로 바뀐 것이다. 대조적으로 袞의 네모는 바뀌지 않고 옛 모습 대로다. 여기서 口나 厶는 (시대에 따라) 다른 디자인 요소일 뿐 뜻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본다. 물론 이론(異論)도 있다.

옷[衣]이 공(公)자 품어 임금님의 옷이 됐다. 公자가 원래 지닌 존경의 뜻이고, 극존칭으로 쓰이게 된 속뜻이다. 듣기 어려워진 ‘아무개 公’이라는 호칭(呼稱)도 그런 의미다. 자기에게 또는 제 이름에 公자 또는 공인이란 말을 붙일 수 없는, 붙이면 우스개가 돼버리는 이유다.

‘유명한 사람’이란 영어 설레브러티(celebrity) 단어가 요즘 유행하나보다. 이 ‘유명인’과 ‘공인’은 같지 않다. ‘유명인 플러스 알파(α)’가 공인이다. 여기서 알파는 고귀함 또는 책임감이다. 서양에도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이 튼실하다.

유명하다고 혹은 돈이 많다고 ‘공인’ 행세할 수는 없다. 스스로 저를 공인이라고 부르는 ‘셀프 공인’ 모양새의 실상이나 본질을, 특히 언론인들은, 깨우칠 일이다. 기자의 긍지를 다시 세우는 자세이기도 하다. 公은 공평무사(公平無私)다. 의리(義理)와도 통한다. ‘으리’말고.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장

 

 

< 토/막/새/김 >
곤룡포(袞龍袍)는 용무늬 보(補)를 가슴과 등, 양어깨에 붙인 임금의 평상복이다. 복식전문가인 홍익대 금기숙 교수는 “곤룡포의 補는 다섯 손톱 가진 전설상의 오조룡(五爪龍)을 금실[금사(金絲)]로 수(繡)놓은 장식으로 왕실의 의장(儀章)과도 같았다.”고 설명한다. 도포에 임금의 위엄을 과시하는 이미지를 입힌 것이다. 용과 여의주, 구름이 한 자리에서 어우러지는 밀도 높은 그림이다. 왕세자의 보는 4조룡, 왕세손(王世孫) 보는 3조룡으로 세대 간에 차이를 두었다. 補는 흉배(胸背)의 다른 이름이다. 왕실의 흉배를 따로 補라고 한 것이다.

 

 

 

   
▲ 조선시대 영조의 초상화. 홍색(紅色)과 황금색이 강렬한 대비를 보이는 왕의 옷이 곤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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