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은 여러 상황 종합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최저임금 인상에는 뜻을 같이 하나 이것은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길 일이지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자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하나같이 “최저임금위원회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논의에 불을 지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19일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정 위원들이 합리적으로 논의해 적정수준에서 결정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을 쏟아낸 정부여당이 결국 그 책임은 최저임금위원회로 미루고 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위원회가 합리적인 논의를 거치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 공익위원들이 결정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정부기관이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권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나와 있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고 심의결과에 따라 최저임금을 확정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위원회는 근로자 위원 9인, 사용자 위원 9인, 공익위원 9인 등 27인으로 구성되며 이들 위원이 참여하는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얼핏 보면 노·사·정 모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합리적 구성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구조다.

지난 10여 년 간 노측은 20-30% 수준의 인상을 첫 번째 안으로 제시했고, 사측은 2-3% 인상, 동결, 혹은 삭감을 주장했다. 둘 사이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공익위원들이 안을 제시하고, 이 안을 받아들인다.

   
▲ 출처 = 이상헌 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페이스북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의결 경위 보고서 속 회의록에는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2014년 6월 12일 3차 전윈회의에서 노측은 시급 6700원(28.6% 인상), 사측은 시급 5210원(동결)을 제시했다. 2차례 정회를 거쳤으나 노사는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6월 24일 5차 회의에서도 2차례 정회를 거쳤으나 노사는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양측은 6월 26일 6차 회의에서 수정안을 제시했다. 노측은 1차 수정안에서 최초 요구안과 동일한 시급 6700원을, 2차 수정안에서 시급 6630원(27.3% 인상)을, 3차 수정안에서 시급 6390원을(22.6% 인상)을 내놓는다. 사측은 1·2차 수정안에서 시급 5245원(0.7% 인상)을, 3차 수정안에서 시급 5265원(1.1% 인상)을 내놓았다. 이어 6월 27일 7차 회의에서 노측은 시급 5990원(15% 인상), 사측은 시급 5320원(2.1% 인상) 안을 제시했다.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노사는 공익위원들에게 ‘심의촉진 구간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익위원은 5.4%~7.4% 인상 선에서 합의를 보라고 했으나 노사는 이 안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결국 노사는 공익위원이 단일 안을 제시해달라고 재차 요청했고 공익위원은 5580원(7.1%) 인상을 제시했다. 사측 위원 9명이 전원 퇴장한 이후 표결이 이루어졌고, 공익위원 안은 결국 2015년 최저임금이 됐다.

2013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3년 6월 7일 2차 회의에서 사측은 4860원으로 최저임금을 동결하자고 주장했고, 시급 5910원(21.6% 인상)을 제시한 노측은 동결안에 유감을 표명하고 전원 퇴장했다. 노사 간 이견차가 이어지다가 7월 4일 7차 회의에서 공익위원은 시급 5210원(7.2%) 인상을 제시했다.

노측 위원 3명은 표결 전 저임금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안이라며 퇴장했다. 사측위원 9명은 소득분배 상황을 고려할 때 납득하기 어렵다며 퇴장했다. 노측 3명, 사측 9명이 빠진 상태에서 공익안 5210원은 2014년 시급으로 결정됐다.

이처럼 누가 공익위원들이 누가 되느냐가 최저임금 결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공익위원을 포함해 위원 27명 중 26명의 임기가 올해 4월 23일이면 끝난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지난 16일 열린 토론회에서 “조만간 새로운 공익위원 명단이 나온다.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 오를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문제는 공익위원들이 노사 안을 ‘반치기’하는 선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2009년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런 문제점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10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75%로 역대 최저였다.

2009년 노측은 5150원(28.7%)을 제시했으나 사측은 지난해보다 5.8% 삭감한 3770원을 제시했다. 5차 회의에서 노측은 사측이 제시한 5.8% 삭감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최초 요구안에서 5.8%를 뺀 22.9% 인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측은 “경제위기 상황과 중소기업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수정안 제시하기 어렵다”며 버텼다.

이후 수정안을 거치면서 사측의 안은 찔끔찔끔 오른다. -5.0%, -4.0%, -2.0%, -1.5%, -0.5%, -0.25%. 9차 수정안에서야 사측의 최저임금 안은 ‘동결’이 됐다. 이후 노사의 의견은 3.9% vs 1.125%까지 좁혀졌고 공익위원은 2.75% 인상인 시급 4110원을 제시했다. 이는 2010년 최저임금이 됐다. 노사 제시안의 중간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탓에 삭감 안이 제시될 경우 최저임금 인상률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 연도별 최저임금 인상추이.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의 토론회 발제문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정책 및 제도개선 과제’에서 발췌.
 

이러한 부작용의 대안으로, 법에 최저임금의 기준을 명확히 명시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상헌 ILO(국제노동기구) 부사무총장 정책특보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실질노동생산성 증가만큼은 올려줘야 한다. 이게 하한선이며 그 이하로는 제안 자체를 제시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법에 못 박아야한다”며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40% 이하일 수 없다는 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하한을 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도 비슷한 내용이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최저임금이 “전체근로자 평균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법에 명시하는 것이다.

공익위원들은 누가 결정하나? 정부 마음대로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공익위원들은 어떻게 선정될까. 최저임금법 시행령 12조에는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임명에 관한 규정이 있다. 12조 1항은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 및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위촉한다”이다. 3항에 근로자위원은 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에서, 사용자 위원은 사용자단체 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하는 단체에서 추천한 사람 중에 제청한다고 나와 있지만 공익위원이 어떻게 임명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제13조에 공익위원의 위촉기준이 나와 있다. ▷3급 이상의 공무원이었거나 공무원이었던 사람 중 노동문제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5년 이상 대학에서 노동경제, 노사관계, 노동법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그 밖에 이와 관련된 분야의 부교수 이상으로 재직 중이거나 재직하였던 사람 ▷10년 이상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연구에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하였던 사람 ▷ 위의 조건에 상당하는 학식과 경험이 있다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사람

하지만 기준만 명시되어 있을 뿐 누가 추천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추천 방식이나 선정과정 등은 법에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공식절차는 없고 비공식적으로 외부의 의견을 들어보고, 평판도 들어본다”고 설명했다.

선정과정이 폐쇄적이니 공정성 논란이 일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4년 보고서를 통해 당시 공익위원이 “경제학자 5인, 경영학자 2인 등으로 구성돼 경영논리에 의거한 최저임금 결정에는 장점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보호나 생활수준 개선이라는 측면이 고려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활동 중인 공익위원 9명 중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한 8명 중 경제학과 교수가 1명, 경영학과 교수가 2명, 소비자아동학과 교수가 1명, 소비자주거학과 교수가 1명이다. 나머지 3명은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출신이다.

   
▲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명단.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ILO협약 제131호 제4조에도 공익위원 임명과 관련해 사용자단체 및 노동자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지명하도록 되어 있지만 정부는 논의 없이 결정한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16일 토론회에서 “비공식적으로 앞으로 임명될 공익위원들에 대해 알아보니 다 친사용자에 가까운 인물들”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토론회장에 있던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는 일이 있었다.

한 근로자 위원은 “정부가 추천하기에 공익위원들이 공정한 위치에서 판단하고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일방적으로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사용자 편향적인 위원들을 중심으로 추천했고 그 결과 최저임금이 낮은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공익위원 선정과정을 수정하는 여러 법안이 계류 중이다. ▷공익위원을 국회, 대통령 및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 또는 지명한다(전병헌 의원 발의) ▷ 노사가 추천한 자 중 근로자위원과 사용자 위원이 투표로 선출(심상정 의원 발의)

‘합리적 최저임금 결정’ 요청이 ‘독립성 침해’라는 사용자 위원

결국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조에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고 향후 5년 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하여 소득분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합리적 수준의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얼핏 보면 당연하고 의례적인 표현이었으나, 사측은 이에 반발했다. 2013년 6월 14일 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사용자 위원이 고용노동부 장관의 요청을 “법상 결정기준에 없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요청서에 담고 있는 것은 개인적 의견으로서 위원회의 독립성을 저해하여 최저임금 심의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해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를 ‘독립성 침해’로 취급하고 넘어간다면 의례적인 인상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를 넘어서는 최저임금 결정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고용노동부가 아닌 국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황이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최저임금은 노동부가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자영업자, 중소기업 문제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2012년 3월 최저임금연대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3년도 최저임금 인상액을 제시하며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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