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주한미국 대사 피습사건으로 여당이 테러방지법의 제정을 시도하고 있다. 각종 인권침해 요소와 자의적 해석 가능성 탓에 ‘제2의 국가보안법’ 논란이 일어 여러 차례 폐기됐던 위험한 법이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검증은 무디기만 하다. 

테러방지법의 역사는 2001년 김대중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9.11테러가 계기가 됐고 2002년 월드컵을 안전하게 개최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테러방지법은 대테러센터를 설치, 국가정보원이 자체적으로 테러 수사권을 갖고 대테러 임무에 동원된 군병력에 현장보호 및 경비임무 범위 내에서 경찰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테러방지법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테러방지법 가운데 불고지죄, 허위사실 신고죄, 참고인구인․유치․구속기간 연장, 외국인에 대한 불심건문 등 조항은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나왔다. 상설적인 비상계엄령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과 재정경제부, 법무부도 이 법안을 반대했다. 국정원의 수사 업무가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고, 계엄선포 등 국가비상상태가 아닌데 군이 경찰권을 행사하는 건 월권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테러방지법 제정 논의는 계기만 생기면 그 이후로 튀어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이라크로 선교활동을 간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제정을 시도했다. 테러범죄 및 불고지죄에 대한 가중처벌 및 미수범 처벌, 대테러 활동에 동원된 군병력의 불심검문과 보호조치 등 인권침해 조항은 삭제했지만 보수언론까지 반발했다.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지난해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테러 유사시 국민 기본권을 유보시킬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국정원으로 설정했다는 전제였다. 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에서 더 멀어지도록 수사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모자라 내친김에 대테러 정책 집행력까지 넘보던 정치권 일각의 반인권 법안이 재론되는 저의를 우리는 거듭 경계한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도 지난 정부에서 폐기된 테러방지법 제정에 착수했다.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두는 등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테러집단 범위를 ‘유엔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단체’와 ‘이 단체를 지원하거나 이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 국내외 결사 또는 집단’으로 자의적 법 적용이 가능해지는 법안이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매번 폐기됐던 법안이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사건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12일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국정원장은 부의장으로 대테러대책회의를 구성할 수 하고 국정원장을 수장으로 하는 테러위협통합센터를 꾸릴 수 있는 ‘테러 예방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미국도 김기종씨의 피습사건으로 ‘테러’로 규정하지 않는데 대한민국 국회가 호들갑을 떨며 이번 일을 공안체제로 강화하려는 것이다. 역시나 테러방지를 이유로 국민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고, 그 주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정원이라는 점에서 역시나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종로경찰서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되며 "전쟁 훈련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12일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만들자는 게 테러방지법의 핵심이다. 테러 문제에까지 국정원의 수사권이 확대된다면 국정원의 비대화될 것이 뻔하고 국정원 개혁은 물 건너가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김기종씨는 상해죄나 외국사절에 대한 폭행죄 등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어 굳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메인뉴스에서 언급을 피하거나 피상적으로만 보도하고 있다. 김기종씨 피습 사건 이후 보도를 살펴보면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SBS <8 뉴스>에서는 테러방지법 관련 리포트가 없다. 

KBS <뉴스9>는 9일 후반부 ‘간추린 뉴스’에서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오는 15일, 정책조정협의회를 열어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부각된 테러 방지 법안 처리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만 전했다. 이 보도에는 이를 반대하는 야권의 입장과 반대 이유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오히려 이 보도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전한 방송사는 MBC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10일 리포트 <테러방지법 처리 공방…'민간인 사찰?'>에서 “국가정보원에 테러방지 기구를 만들어 위험인물의 출입국을 규제하고 통신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는 테러방지법안을 소개하며 여야의 입장 차이를 기계적으로나마 전했다.

   
▲ JTBC <뉴스룸> 11일자 보도
 

테러방지법에 대해 이슈를 제기한 방송사는 JTBC다. JTBC <뉴스룸>은 <‘테러방지법’ 밀어붙이는 새누리당…정치권 최대 쟁점>에서 여야 입장을 전한 뒤, <‘국정원 파워’만 세진다…테러방지법 도입, 문제점 보니>, <7살 아이가 요주의 인물?…테러방지법 미국서도 논란> 리포트를 뒤이어 내보냈다. JTBC가 지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법원에서 영장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계좌 등을 열어볼 수도 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의심이 가면 민감한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옥상옥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가보안법이나 형법으로도 적법한 근거만 있으면 얼마든지 압수수색이나 합법적 감청이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대테러센터를 따로 세우는 조항도 포함됐는데, 이미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같이 유사한 기능을 하는 기구가 있어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한은 막강한 데 통제가 안 된다는 문제점도 불거지고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테러방지법이 정치권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면 방송사도 공론화하는 게 맞다. 지상파 뉴스의 침묵은 테러방지법 도입을 위해 여론을 떠보는 사람 입장에서 ‘시끄럽지 않으니 해도 된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또한 “기계적 중립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권한이 엄청나게 커지고 인권침해 요소가 많아서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굉장하다. 어떤 문제점이 있고, 필요한지를 언론이 제대로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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