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콩 나기’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지상파 방송사가 편성한 시사교양 및 오락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진행자와 고정출연자 비율은 32.6%다. 오락예능 프로그램으로 가면 여성의 출연 비율은 25.2%로 더 줄어든다. 한국의 방송 환경은 질적인 면은 고사하고 양적인 성평등에서도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대한민국의 남성 비율은 49.98%, 여성 비율이 50.01%로 여성이 14,186명 많다. 남녀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미디어오늘이 방송3사의 185개 시사교양 및 오락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고정게스트(통칭 출연자, 프랑스 시청각위원회의 출연자와 다른 개념) 남녀비율을 조사한 결과, 방송 출연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남성의 3분의 1수준(32.8%)이다. 

방송사별로 보면 남성 편중이 가장 심한 방송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영방송사인 KBS였다. 여성 비율이 29%에 불과했다. 총 64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의 남녀 비율은 각각 62.2%(46명), 37.8%(28명)이지만 31개 오락예능 프로그램으로 가면 비율 격차는 확 벌어졌다. 남성 출연자 비율은 80%(60명)까지 치솟았고, 여성 출연자 비율은 20%(15명)까지 시사교양 프로그램보다 2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KBS 방송강령 11조에는 “남녀의 성은 평등하게 취급하며 어느 한 쪽을 비하하여 다루지 않는다”고 돼 있지만 적어도 방송 진행자 성비의 균형에서는 오히려 타 방송사보다 수준이 낮은 셈이다. 

MBC는 KBS보다 상황이 조금 낫지만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이다. 남녀 출연자 비율이 각각 66.7%, 33.3%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의 남녀 출연자 비율이 거의 같다. 남성 출연자 비율이 51%(25명), 여성 출연자 비율이 49%(24명)이다. 하지만 오락예능 프로그램으로 가면 남녀 출연자 비율은 각각 76.2%와 23.8%가 된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S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의 여성출연자 비율이다. 유일하게 여성이 19명(52.8%)으로 남성 17명(47.2%)보다 많다. 하지만 이 수치를 역시 무의미하게 만드는 건 오락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비율이다. 남성 출연자 비중이 69.9%(92명)이지만 여성 출연자 비중은 30.1%(31명)다. 

케이블이나 종합편성채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잘 나가는 프로그램 몇 개를 꼽아보자면, tvN <삼시세끼>도 이서진과 옥택연, 차승원과 유해진 등 남성 출연자로만 이뤄진 조합이다. JTBC <마녀사냥>은 신동엽을 중심으로 성시경, 유세윤, 허지웅이 출연하고 <비정상회담> 출연진도 모두 남자다. 요리 프로그램인 Olive <오늘 뭐 먹지?>, <수요미식회>와 JTBC <냉장고를 부탁해>도 그렇다.   

예전엔 이경실이나 이영자, 박경림 등 여성 개그맨들이 오락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에 섰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과 같은 영향력 있는 여성 개그맨들이 오히려 없어졌다.  

오락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 출연자 비중이 높은 이유는 일단 주인공 자체를 남성으로 설정한 프로그램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MBC <아빠! 어디가?>,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대표적인 예고, MBC <진짜 사나이>도 여군 특집이 있긴 했지만 역시 남성 출연자가 주다. SBS <자기야-백년손님>도 진행자는 김원희지만 연예인 사위와 장모 간의 관계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여성 연예인들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은 사실상 케이블 TV에서의 미용 관련 프로그램이다.

   
▲ MBC <무한도전>(출처=MBC)
 

방송 제작진이 남성 연예인에게 더 적합하다고 평가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예능이 예능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은 점도 이유다. KBS 2TV <1박2일>, <우리동네  예체능>, MBC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는 출연자 전원이 남성이다. SBS <런닝맨>에 송지효가 고정 출연하고 <정글의 법칙>에도 여성 출연자가 나오지만 단 한 명이고 패키지로 끼워 넣은 느낌이다. KBS <인간의 조건> 역시 여성 개그맨 특집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특집’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성 출연자들은 예쁜 연예인이거나 뚱뚱하고 웃긴 여성 개그맨들으로 양분돼 있다. 

여배우들이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하면 영화 스토리가 대체로 남성을 주인공이라는 전제로 만들어지거나 남성적이어서 마땅히 맡을 배역이 없어 고심한다고 한다. 한석규, 송강호, 하정우가 잘 나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연기력이 바탕이 됐겠지만 이러한 풍토로 무시할 수 없다. 여성 연예인들도 여배우들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방송환경에는 남성이 상황을 만들거나 주도하고, 여성은 경청한다는 오래된 습관과 고정관념도 녹아 있다. 남성은 주체, 여성은 객체라는 이분법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남성 출연자와 여성 출연자가 공동 진행하는 관행이 자리잡아 오락예능 프로그램만큼 남녀 비율 격차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지상파 3사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다.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 <일요진단>, 진행자는 모두 남성이다. MBC , <100분토론>도 마찬가지다. 정통 시사프로그램은 아니지만 SBS <그것이 알고싶다>도 배우 김상중이 진행한다. 

여성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례는 거의 없다. 배우 김혜수가 MBC 진행을 맡았고, 손정은·문지애 아나운서가 예전 MBC ‘생생 이슈’ 코너를 담당했던 정도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남성들이 (대중을) 잘 이끌고 대표격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가족오락관이 대표적인데 허참씨가 프로그램을 이끌고 여성MC는 계속 바뀌었는데 주로 문제를 설명하는 수동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여성이 방송에서 활약할 수 없는 구조를 재생하기도 한다. 윤 소장은 “진행을 주로 남성들이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는데 여성은 항상 보조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숙련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KBS 1TV <아침마당> 진행을 주도하는 이금희 아나운서는 이런 방송환경에서 특이한 사례다. 

물론 남성 개그맨 숫자가 더 많고 그래서 재능있는 남자 개그맨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지금과 같은 남성 편중의 방송환경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되지 못한다. 윤 소장은 “남성 개그맨들이야 유재석처럼 되는 것이 꿈이겠지만 여성 개그맨들에게는 누가 롤모델이 될까. 박미선 정도다. 물론 이경실과 이영자도 있고, 송은이도 있지만 현재 방송에 (고정적으로)나오고 있는 사람은 송지효와 성유리(SBS <힐링캠프>)와 같은 예쁜 여성들이다. 결국 외모로 경쟁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김병호)에서 낸 <신문과방송> 3월호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통과된 ‘진정한 남녀평등을 위한 2014년 8월 4일 법’에 따라 시청각최고위원회가 각 방송사 편집국장들과의 협의 끝에 올해 2월 6일 ‘방송사들의 여성 인권 존중에 관한 심의’를 발표했다. 

시청각최고위원회는 TV 및 라디오의 모든 장르 프로그램에 대해 △남녀가 평등하고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주지 않는지 여부와 진행자·전문가·출연자의 남녀 비율 등을 감독한다. 또한 선택 사항이지만 방송사는 편성과 인력 수요에서도 양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시청각최고위원회와 협력할 수 있다. 

시청각최고위원회는 또한 6일 ‘2014년 방송에서의 여성 재현’ 보고서도 발표했다. 프랑스 인구 비율이 남성 48%, 여성 52%이지만 방송에 등장하는 여성 비율은 36%, 남성 비율은 64%이었다. 대한민국 방송사들에 대해 여성 인권 존중에 관한 심의를 한다면 과연 몇 점이 나올까.  

   
▲ 프랑스 시청각최고위원회가 마련한 '여성인권존중에 관한 심의'(출처=<신문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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