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가해자 김기종씨가 보인 극단성 때문이다. 리퍼트 대사가 보인 태도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리퍼트 대사는 시종일관 차분하게 대응했다. 때론 “김치 먹고 힘난다”고 하는 등 위트있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부 한국 사회와 언론의 태도에선 흥분과 오버가 넘쳤다.  

일부 시민들은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요란스럽게 부채춤을 췄다. 여당은 또 다시 야당을 공격했다. “종북숙주‘ 참회록을 써라”는 식이다. 야당 정치인들이 김씨의 예전 국회 기자회견 당시 장소를 빌려줬다는 얘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는 이참에 종북, 폭력과 단절하라고 억지스러운 주문을 하는 신문도 있다. 

신문들이 리퍼트 대사를 걱정하는 사이 정작 우려스럽게 된 건 대한민국 외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정부가 이번 사건을 종북으로 몰고갈 수도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미외교에서 그렇다. 안그대로 대미외교에 치우친 이번 정부의 외교가 자의반, 타의반 더욱 편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음은 9일자 전국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어린이집 보육예산 ‘또’ 바닥…넉 달간 아무것도 안 한 정부>
국민일보 <남북, 임금 충돌 개성공단 ‘암운’>
동아일보 <지역이주 않고 통근 ‘원정 출근’ 130만명>
서울신문 <“한국 경제 디플레 초기”…저성장 위기론>
세계일보 <나랏돈 수혈받고도 낭비炳 못 고친 수협>
조선일보 <‘脫北民 3만명’ 그들의 꿈도 보듬자>
중앙일보 <아파트 전세난민, 연립 사서 옮긴다>
한겨레 <평창 4종목만 국내 분산해도 공사비 3658억 아낀다>
한국일보 <그날처럼 평화의 손 맞잡고>

시민들의 오버 “대사님 사랑합니다”

경향신문은 2면 기사 <리퍼트도 부담스러워할 ‘과공’>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부 시민과 단체의 열성적인 ‘쾌유 기원’ 행위는 보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일부 종교단체, 시민단체들이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다며 지나칠 정도의 집회의를 열었기 때문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 및 국가안위를 위한 경배 찬양행사’를 열고 부채춤과 발레, 난타 공연을 펼쳤다. 

   
▲ 경향신문 9일자 2면 기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도 기도회가 열리고 공연이 벌어졌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엄마부대봉사단’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란 문구를 내걸고 쾌유 기원 집회를 가졌다.

지난 6일에는 연세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70대 남성이 “대사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며 개고기와 미역국을 병원에 가져왔다. 이 남성은 “대사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의미에서 직접 음식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호팀의 만류로 안내데스크에서 돌아갔다. 부채춤 행사와 개고기 선물은 AP통신, 뉴욕데일리, 폭스뉴스 등 외신에도 소개됐다.

   
▲ 조선일보 9일자 4면 사진
 

조선일보 기사 <촛불‧난타공연…‘세준 아빠’ 응원 신드롬>에 다르면 그가 입원 중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는 시민들인 직접 영어로 쓴 편지, 카드, 리퍼트 대사 가족의 한글 이름과 태극기, 성조기가 새겨진 태권도 도복 여러벌, 대사의 애견을 위한 강아지 사료 등 선물이 잇따르고 있다. 

여당의 오버 “새정치연합은 종북숙주”

새누리당은 8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두고 “야당이 종북과 손잡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라며 제1야당을 비난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여의도당사 브리핑에서 “미 대사 테러범 김기종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같은 북한 주장을 입에 달고 다니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폭력시위 단골 참가자였다”며 “그런 김씨가 시민운동가로 행세한 데는 야당 의원들과의 교류가 한몫했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9일자 4면 기사
 

박 대변인은 “조금의 반성도, 진지한 자성도 없는 야당 모습이 안타깝다”면서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다. 정치적 이용을 말라며 얼버무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4면 기사 <여 “새정치 ‘종북숙주’ 참회록 쓸 때”…도 넘은 색깔론 공격>에서 “ 지지율 하락 등 위기정국을 넘으면서 4·29 보궐선거에서 지지표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번 사건을 종북몰이로 활용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 중앙일보 9일자 4면 기사
 

정치권은 김기종씨가 2010년과 2012년 야당 의원의 도움으로 국회 기자회견장을 두 차례 찾은 것도 문제삼고 있다. 중앙일보 4면 기사 <김기종, 국회 기자회견 2번 참석>에 따르면,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8일 국회 사무처로부터 김씨가 2012년 8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 유상호 의원의 일본 방위백서 규탄 회견에 참석했고, 2010년 4월 같은 당 이종걸 의원의 국회 기자회견에 나와 일본 교과서의 독도 표기 승인 취소를 촉구했다. 

한 의원은 “사전 보안검열 없이 무방비로 자유롭게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제2의 김기종 사태가 나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며 “국회사무처는 국회 기자회견장 운영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의 오버 “좌파 극단주의에게 관대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을 좌파 극단주의라고 규정했다. 대부분 동의할 수 있는 규정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았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리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면 누구든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논조는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 조선일보 9일자 4면 기사
 

조선일보는 4면 기사 <민족주의로 포장한 左派 극단주의…제2, 제3의 김기종 나온다>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게 '칼부림 테러'를 가한 김기종(55)이 예전에도 4차례나 시민들이 모인 장소에서 난동을 부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가 사실상 김과 같은 극단적인 폭력주의자들이 기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오랜 민주화 투쟁 기간을 거치며 좌파 극단주의자들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관대하게 대했던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2009년 화물연대가 ‘죽창’을 휘둘렀지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고,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주도한 문정현 신부가 경찰관을 폭행하고도 징역8개월에 집해유예2년이 확정된 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조선일보는 그 화살을 야당에게도 돌렸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시작된 촛불시위가 '정권 퇴진'을 외치는 폭력 시위로 변질됐지만, 당시 통합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의 야당 인사들은 매일 밤 거리시위에 동참하면서 불법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9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종북 단절 선언’을 하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새정치연합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대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선거 연대를 했다. 그렇게 해서 표를 조금 더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통진당 세력이 국회와 지방정부에 다수 진출하는 데 숙주(宿主)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새정치연합이 아직도 이들을 비호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당 차원에서 종북·폭력과의 단절을 분명히 선언하고 과거 들러리 역할을 한 데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대미외교 목소리 내기 어려워져 

이번 사건의 여파를 차분하게 짚은 언론도 없진 않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 <한국 ‘종북 자충수’…대미외교 입지 위축…더 꼬이는 ‘4강 외교’>에서 “정부가 극단적 사고를 가진 개인의 돌출행동을 ‘국내 반미·친북 세력이 만연한 결과’로 몰고 가면서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미·러 갈등 속에서도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은 한국이 이 같은 외교환경 속에서 힘겨운 ‘균형잡기’를 시도하고 있는 와중에 터졌다”고 분석했다. 

   
▲ 경향신문 9일자 3면 기사
 

경향신문은 “이번 사건으로 한국이 대미외교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및 미사일방어(MD) 참여 문제에서 정부의 선택폭은 크게 제한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한국 외교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동안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해온 5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행사’도 사실상 이번 사건으로 참석이 불가능해졌다”면서 “북한이 이번 사건을 ‘정의의 칼 세례’라고 찬양하는 비이성적 반응을 보인 것도 정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관계에서도 한국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보폭이 좁아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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