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대해 “이 사람(피의자 김기종씨)은 여러 번에 걸쳐 이런 일을 했다”며 “과연 어떤 목적에서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 여당, 검‧경 그리고 언론이 대대적 ‘종북몰이’에 나서고 있다.

보수 언론은 김씨의 범죄 행위 배후에 ‘종북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야당 의원들과 무리한 연결짓기를 시도했다. 동아는 북한의 대남 선동과 김씨 주장이 대동소이하다는 이유를 들었고, 중앙도 그의 집에서 김정일이 쓴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에 가세했다.

한국은 한미 동맹관계에 훼손을 가하려는 ‘계획된 테러’로 간주하지만 미국은 이와 무관한 개인의 우발적 일탈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국에서 미국을 겨냥한 정치적 테러가 발생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을 꺼린다. 국익에 타격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경향신문의 분석이다. 다음은 7일자 주요 일간지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미국은 “개인 도발” 한국은 ‘종북몰이’>
국민일보 <위기의 한국사회… ‘이념 테러’ 확산되나>
동아일보 <담대한 리퍼트, 血盟 아이콘 되다>
서울신문 <‘야신’ 스파르타 vs ‘제갈량’ 자율훈련>
세계일보 <의연한 리퍼트… 韓‧美 동맹 살리다>
조선일보 <‘從北세력 개입했나’ 집중 수사>
중앙일보 <‘리퍼트 효과’ 테러를 이기다>
한겨레 <김기종씨 보안법 위반 고강도 수사>
한국일보 <광장 메운 적개심… 시한 폭탄 널렸다>

격앙된 조선, 종북좌파 ‘평화’는 주한미군 없는 상태
중앙‧동아, 김기종과 북한 닮은점 찾기 분주

보수 언론의 ‘종북몰이’가 점입가경이다. 조선은 1면에서 <‘從北세력 개입했나’ 집중 수사>라는 기사를 통해 “검찰이 김기종(55)의 범행 과정에서 종북 세력 등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 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선은 김씨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후 경찰이 “2009년 이적단체로 규정된 실천연대가 쓴 ‘주한미군 문제 해결 방안’이란 책 등 이적성이 의심되는 서적들이 발견됐다”며 “혐의가 드러나면 국가보안법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7일자 2면.
 

조선의 기자 칼럼도 김씨를 ‘종북좌파’라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용수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는 <從北좌파의 평화에 현혹되면 안되는 이유>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라며 “그들(북한과 종북세력)에게 평화란 ‘남조선 적화혁명이 완수된 상태’ 또는 적화혁명의 최대 걸림돌인 ‘주한미군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많은 국민이 ‘평화’란 말이 풍기는 긍정적 뉘앙스 탓에 종북 세력이 말하는 ‘평화’에 현혹당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사건은 종북 세력이 속삭이는 ‘평화’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고 평했다. 

조선은 또 <김기종 국회 활동 도운 野의원들 “나와는 무관”, “어쩔 수 없었다”>라는 기사에서 김씨와 야당 의원들을 무리하게 엮기도 했다. 

조선은 “김은 작년 12월 18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우리마당 통일문화연구소’의 제9차 학술대회를 열었다”며 “당시에는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이 도움을 줬다. 김 의원과 김은 성균관대 선후배 사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조선은 같은 당 문병호 의원, 우상호 의원, 이종걸 의원 등을 거론하며 ‘종북 프레임’을 정치권으로 확대했다.

   
▲ 조선일보 7일자 4면.
 

중앙일보는 3면 <김기종 “한‧미훈련은 전쟁연습”… 북 선동 문구 빼닮아>, <김씨 구속수감… 집에서 김정일이 쓴 책 발견>을 통해 “그의 주장과 북한의 대남 선동 내용과 유사하다”, “김씨의 서울 서대문구 자택 겸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쓴 ‘영화예술론’과 이적표현물로 의심되는 북한 원전 5~6건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동아도 2면 <김기종 주장, 北 대남선동과 판박이>에서 “검경이 김씨에 대해 국보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하게 된 것은 김씨가 단순히 이번 테러뿐 아니라 그동안 통일, 반미 활동을 하면서 북한의 대남선동 언동과 유사한 주장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동아일보 7일자 2면.
 

검‧경 대대적 ‘공안몰이’에 우려 

서울중앙지검은 이 건과 관련해 대규모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공안 검사들이 주축이다. 경향에 따르면,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팀장으로 하고 공안1부와 공공형사수사부, 강력부, 첨단범죄수사부 등에서 검사 13명 등 총 36명의 인력을 차출하기로 했다. 경찰 전담팀 75명과 합치면 110여명에 이른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경향과 인터뷰에서 “1990년대 연대 사태(한총련 사태) 등을 제외하면 공안 사건에서 이 정도 규모의 검경 수사팀이 구성된 것은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7일자 2면.
 

경향은 사설에서 “검찰과 경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 및 배후 수사에 착수했다”며 “‘단독 범행’이라는 김기종씨 주장을 뒤엎을 만한 정황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수사 타깃이 ‘배후’로 확대된 것이다. 정권 전체가 똘똘 뭉쳐 ‘종북 공세’에 나선 형국”이라고 우려했다. 

경향은 김씨의 행적과 관련해 “방북은 통일부 승인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고, 평화협정 대체론은 김씨 외에도 다수의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이 제기해온 주장”이라며 “검경의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잠재적 ‘국가보안법 피의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김씨의 피의사실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적용 법조(法條)부터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박근혜의 강경 발언, 미국 반응은 다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이번에 범행을 저지른 사람의 반미,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대다수 우리 국민의 생각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 사람이 여러 번에 걸쳐 이런 일을 했다. 과연 어떤 목적에서 이와 같은 일을 저지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6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밝힌 내용이다. 

이런 지침에 맞춰 당‧정‧청은 지난 6일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미동맹의 심장을 겨눈 끔찍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 7일자 1면.
 

한국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 언론 등이 사건을 한미 동맹과 연결 짓거나 ‘종북몰이’ 등 이념을 자극하는 데 여념이 없지만 미국 반응은 사뭇 다르다. 

경향은 “미국은 한‧미 동맹과 무관한 개인의 우발적 일탈행동으로 규정하지만 한국은 동맹관계에 훼손을 가하려는 ‘계획된 테러’로 간주한다”며 “미국은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국에서 미국을 겨냥한 정치적 테러가 발생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을 꺼린다. 국익에 타격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향은 “동맹국에서 발생한 대미 테러는 미국의 전략적 실패를 의미할 뿐 아니라 동맹 간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정보 판단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향은 “피해자인 미국과 완전히 다른 이 같은 방식(‘한‧미 동맹’ ‘종북’ ‘테러’의 조합)은 정부가 이번 사건을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임을 시사한다”며 “박근혜 정부 특유의 ‘종북몰이’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덧붙였다. 

   
▲ 한겨레 7일자 6면.
 

한겨레는 “미국 언론 보도는 사건 첫날에 견줘 비중이 많이 줄어든 분위기”라며 “CNN 등 주요 방송들은 주로 폭설 피해를 보도하는 데 중점을 뒀고 이 사건은 간헐적으로 보도하는데 그쳤다. 보수파들에 영향력이 큰 ‘폭스뉴스’는 전 백악관 비밀경호국 출신의 경호 전문가를 등장시켜 경호 소홀 문제를 주로 짚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또 “미국이 ‘테러’라는 표현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굳이 이 사건을 테러로 몰고가는 것은 외교적 실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한국이 테러가 벌어지는 지역이라는 이미지 손상을 한국 정부가 앞장서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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