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당국이 6일 미국 대사를 피습한 김기종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혐의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이적표현물 조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정작 먼지털이식 수사에도 보안법을 적용할 만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수사당국이 정권의 주문에 따라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을 적용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날 당정청 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번 사건을 종북 세력의 사건으로 규정을 하고 그 배후나 진상 규명에 대해서 철저하 조사에 대해서도 같이 공감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도 이날 중동 순방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어떤 목적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정치권이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을 내리자 수사 당국이 기다렸다듯이 들고 나온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피의사실과 관련해 미리 가능성만 공표해놓고 표적 수사를 벌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명성 종로경찰서장은 "압수수색 결과에 따라 새로운 증거나 관련 사실이 나오면 수사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리고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인력 25명을 투입해 김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하드디스크와 문건 등을 입수했다. 또한 김씨의 1년치 통화내역과 금융기관 거래 내역 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씨의 모든 네트워크 수단을 조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날 오후 경찰 브리핑에서는 이적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한 물증을 내놓지 못했다.

경찰은 "압수한 서적 가운데 일부는 이적성이 의심돼 분석하고 있다"면서도 책 제목 등과 규모 등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기자들과 질의 응답에서도 '(압수한)유인물에 일부 북한 관련 내용이 있나'라는 질문에 "일부 있다"면서도 이적성 여부에 대해서는 "그건 지금 부서에서 분석 중이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적성 심의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자 국가보안법 규정 판례 수사 관행에서 만들어진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이적성이 의심된다면 판단 근거를 설명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기존의 판례와 규정, 수사 여러 내부 기준을 통해서 의심이라 표현"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결국 이날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이렇게 발표한 거면 브리핑을 왜 하느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또 다른 기자는 "정작 냄새만 풀풀 풍기고 털어서 이날 발표하더니 아무 것도 없다. 압수물 분석이 끝나면 뭐라도 작품을 만들어서 발표하면 민망해질 수 있는 상황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윤명성 종로경찰서장이 6일 오전 서울 종로서 브리핑실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의 피습사건 관련 수사 브리핑을 하고 있다.경찰은 피의자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왼쪽부터 이규문 서울경찰청 수사과장, 윤 서장, 안창수 종로서 형사과장 ⓒ연합뉴스
 

 

김씨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7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을 두고 당시 합법으로 방북한 것인데 행적 조사를 하고 있는 것도 논란꺼리다. 경찰은 김씨가 대표로 있던 우리마당 주최 토론회에서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점을 들어 북한 관련 유사성을 따지고 있지만 이 같은 주장을 근거로 보안법 적용은 희박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김씨는 이날 영장 실질심사에서 북한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의 먼지털이식 수사에 대해 미국 대사 피습 당시 경호를 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경호 실패로 피습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경찰청장 거취까지 흔들릴 수 있는 사안으로 판단한 경찰이 뒤늦게 먼지털이식 수사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씨에 대한 특별수사팀 규모도 대규모로 편성됐다. 팀장은 공안수사 지휘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맡았고 수사지휘반과 수사지원반 2개반 20여명의 인원으로 꾸려졌다. 경찰도 75명의 인원을 편성해 수사 본부를 차렸다.

이재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실체가 있어서 수사를 하면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수사도 안된 상태에서 사건 성격을 규정하고 거기에 따라 검경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기관이 이렇게 운영되는 것은 큰 문제다. 실질적인 조직 활동 일환이라면 모르겠지만 김씨는 알려졌듯이 과거 행적이 나와있고 개인의 우발적 사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가 남북평화 협정 체결을 주장한 것을 들어 북한 유사성이라고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평화협정 체결은 과거 통일부 장관들도 주장했다. 6자 회담에서도 평화협정과 북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나왔다"며 "이런 식이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도 종북세력이다"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