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일명 김영란법이 28일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사학법인연합회는 법의 적용대상에 사립교직원과 언론인 등을 포함한 조항 등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낸 바 있습니다.

헌재는 이날 사립 교직원과 언론인 등이 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합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김영란법은 제정 때부터 많은 논란을 제기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제정 당시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예상해 분석하는 기사를 내놔습니다.

지난 3월 김영란법의 실제 적용 문제에 있어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를 다시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다음에 밥 한 번 살게. 아, 그 때는 친구로서 사는 거야. 직무관련성 없어야 하니까”

김영란법이 통과되던 날 기자가 들은 농담이다. 물론 밥 몇 번 얻어먹는다고 처벌 받을 리는 없다. 그러나 밥 먹는 것을 조심해야할 정도로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해 내년 9월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을 경우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100만원 이하는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처벌하는 법이다.

김영란법은 ‘금품 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물품,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할인권, 초대권, 관람권, 부동산 등의 사용권 등 일체의 재산적 이익, 음식물‧주류‧골프 등의 접대‧향응 또는 교통‧숙박 등의 편의 제공, 채무 면제, 취업 제공, 이권 부여 등 그 밖의 유형‧무형의 경제적 이익”

김영란법은 또한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 등’은 금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사교 목적의 경조사비를 위법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규정이지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두고도 여러 논란이 예상된다.

   
▲ 언론인 관련 부정부패를 고발해 온 미디어오늘의 기사 모음사진.
 

공직자에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까지…관행 바뀔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사회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진 모든 것이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제가 한 번 모시겠습니다’며 술집이나 룸살롱으로 안내해도, ‘나이스샷’을 외치며 같이 골프를 쳐도 모두 부정청탁으로 인정될 수 있다.

‘소박한 정성’이라며 시도 때도 없이 주고받던 입장권, 할인권 선물도, ‘옷 한 벌 해 입으시라’고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던 상품권도, 명절 때마다 실무자들 일거리를 늘려주던 명절 선물도 모두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공직자가 승진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몰려들던 대형 화분, 별 내용도 없이 한 시간만 떠들어도 꽤 짭짤한 용돈을 챙길 수 있던 외부 강의와 강연, 기고도 모두 대상이다. 이처럼 김영란법의 가장 큰 효과는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터져도 직무관련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의 부정청탁 문화가 개선될 여지가 크다.

공직자 범위에는 ‘사립학교’도 포함됐다. 교원은 물론 이사, 이사장까지 대상이다. 교육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크고, 사립학교라지만 사실상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이를 두고 한국교총은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공공기관이라 볼 수 없으며, 이미 금품이나 향응을 받을 경우 승진제한과 같은 징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립학교를 포함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잊을 만하면 도배되는 각종 사학비리와 사립학교 교원들의 부패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라면 의견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3일 국회 공청회에서 “사립학교 교원은 그 신분이 국‧공립학교 교원과는 다르지만 교원의 지위를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고 사립학교 교원의 복무에 대해서는 국공립학교 교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률안의 적용범위에 놓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며 “사립학교 법인 이사의 경우는 임원 선임시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동의‧추천‧제청 등이 필요한 기관‧단체에 해당되므로 법률안의 적용대상으로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사립학교나 학교법인에서의 부패상은 학교마다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경악할 만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영란법에는 언론인들도 포함됐다. 따라서 언론인들의 취재 활동이나 방법에서 변화가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인다. 부도덕한 취재 관행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법학박사인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윤리적 기준을 3만 원으로 정하면 모든 기자가 3만 원 이상 식사 안 되는 방법으로 취재원을 만나야 하고, 정부가 마음먹은 대로 처벌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며 “기자의 탐사보도나 고발 취재 등 모든 행위를 합법의 영역 안에서만 취재해야 하라고 요구하는 건 맞지도 않고, 그게 국민이 한국 언론에 기대하는 수준인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취재원과의 의례적인 식사나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것은 취재방법에까지도 정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또 언론사의 경우 당장 해외 취재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홍보 목적으로 기자들을 초청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항공료부터 숙박비, 식비, 기타 편의시설 이용 비용 등 1인당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해왔다.

물론 상당수 해외출장 일정이 취재보다는 골프투어 등 접대와 향응 성격인 경우도 있지만, 자비를 들여 해외 행사에 참여하거나 취재원을 만나기 어려운 영세한 매체의 경우 공익적 보도 목적일지라도 김영란법에 따르면 취재가 제한된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실제 미국 등 각 나라의 업체가 초청해서 가보면 반드시 그 업체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기사만 쓰는 것은 아니다”며 “비판적 관점으로 문제점을 파악해 올 수 있고 공익적 기능도 있는데 일도양단으로 잘라버리면 특히 소규모 언론사의 경우 정보 접근 자체가 안 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 3일 오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47인,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한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해외출장은 철저하게 업무와 관련되다보니 김영란법의 영향이 있다”며 “일상적인 업무는 기자들과 같이 밥 먹고 저녁에 간단히 술 한 잔하는 수준이 대부분이라 크게 영향 받는 것은 없을 것 같다. 더 높은 회사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실무 수준에서는 그렇다”고 밝혔다.

‘형평성’도 문제다. 김영란법이 통과된 이후 많은 언론들이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물귀신 작전’이라고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합리적인 지적도 있다. 정치권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이익단체나 시민단체의 경우 공공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립학교나 언론 못지않게 공공성을 띤다. 또한 의료는? 금융은?

김주영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을 ‘공직자 등’의 개념에 포함시킨 것은 공공적 속성은 물론 부정청탁 사건 발생빈도나 사회적 관심사를 토대로 정당화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민간부문의 다른 영역, 예를 들면 민간 의료계‧금융계를 비롯하여 나아가 대기업과 하청기업에서의 부정청탁은 왜 대상으로 삼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애매한 법 조항도 해결과제

혼란이 있겠지만 적용대상이야 이것저것 집어넣어 확대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법 자체의 애매모호함은 과제로 남는다. 그만큼 김영란법이 규제하는 대상이 일상적인 관행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는 여러 예외조항이 있다.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의 개정 및 폐지, 정책의 개선에 대해 제안하는 경우’, ‘공공기관에 직무를 법정기한에 처리해줄 것을 신청하거나 문의하는 경우’다.

예컨대 개인 사업자가 업무와 관련해 지자체 공무원에게 직접 전화해서 ‘빨리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면 이는 김영란법 위반일까 아니면 예외조항에 해당할까? 또는 개인사업자의 요구를 받은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가 요청한다면?

정답은 법적인 처리기한 내에 해달라는 요구면 위법이 아니고, 재촉하면 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상황을 칼로 무 가르듯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3자,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의 요청은 ‘공익적 목적’인 경우 허용되지만 공익적 목적이라는 말도 사실 애매하다. 예컨대 방폐장이나 쓰레기매립지, 장애인 시설 건설 등 공공의 필요에 의한 시설인 동시에 건설업자 입장에서는 사적 이해관계가 걸린 일들이 정말 많다.

   
▲ 대한변호사협회 강신업 홍보이사(왼쪽)와 채명성 법제이사가 5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김영란법에 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더 애매한 예외조항은 ‘그 밖에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 학부모 몇 명이 학교에 갔다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는 선생님들 먹으라고 간식을 사줬는데 100만원이 넘었다면 김영란법 위반 대상일까? 평소 친분이 있던 친구에게 명절선물을 보냈는데 친구의 아내가 학교 선생님이었고, 선물을 보낸 이는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학부모였다고 치자. ‘직무관련성’이 있기에 처벌 대상일까 아니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 걸까.

거칠게 정리하자면 김영란법의 애매모호함은 ‘관계 규정’에서 비롯된다. 기자인 나, 그리고 기업 홍보담당자인 고등학교 동창친구 사이의 관계는 직무관련성이 강한지 아니면 사교 목적이 강한지를 법원이 정의해야한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의 많은 관계가 각종 인맥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는 꽤나 복잡할 수 있다.

오경식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법의 제정으로부터 얻는 청렴성과 공정성에 비해 사회적 혼란의 양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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