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처음으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가계소득 중심의 내수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기업에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여당도 디플레이션 우려에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극복 방법은 금리 인하로 온도차를 보였다. 야당과 전문가들은 최경환 부총리의 대책에 점수를 줬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고개를 저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로 열린 조찬강연에서 “저물가 상황이 오래 지속돼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5일자 아침신문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처음으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언론은 1면 기사에서 “디플레 일축하던 최경환 ‘큰 걱정’ 첫 인정”(경향신문), “정부發 첫 ‘디플레 경보’”(동아일보), “최경환 ‘저물가 지속 디플레 큰 걱정’”(한겨레), “최경환의 반전… ‘디플레 우려’ 첫 표명”이라고 제목을 단 기사를 보도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그러면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살아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며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을 연간 7%대로 올렸고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물가 현상을 벗어나기 위해 가계소득 상승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최근 기업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 예를 들며 이 같이 강조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4년 11월 1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홈페이지
 

 

정치권에서도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4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어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담뱃값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률이 0.58%라고 하니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우려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어 “정부와 한국은행 등 경제당국은 면밀한 진단과 정확한 예측으로 한국 경제의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며 사실상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이 됐지만 해결 방안은 달랐다. 최경환 부총리는 가계소득 증가로 인한 내수시장 활성화를 대안으로 내세웠고 김무성 대표는 금리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촉진을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꼽은 것이다. 

   
▲ 조신일보 2일자 아침신문 1면.
 

 

디플레 우려와 함께 금리인하를 요구한 것은 사실상 언론이 먼저였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자 아침신문에서 “주요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실업과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 파이터로 싸우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캐나다·호주·덴마크·인도 등 11개국과 유로존 나라들이 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를 단행해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한은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은 어려운 국내 경기 상황과 0%대 저물가에도 선제적인 대응은 고사하고 번번이 시기를 놓쳐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과 조선일보의 ‘금리인하’ 압박은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고영기 한신대 교수(경제학과)는 금리인하 주장을 두 가지로 비판했다. 고기영 교수는 “기업이 경기 활성화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일각이 요구하는 금리인하는 경제 활성화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영기 교수는 이어 “한은의 금리인하는 사실상 기준금리 인하로 그 수혜자는 부자와 기업일 뿐”이라며 “지금처럼 서민이 지갑을 열어야 하는 상황에서 맞지 않다”고 말했다. 고영기 교수는 “정말 금리인하로 물가상승을 유도하겠다면 서민 금융인 제2금융권의 실질 금리를 낮춰야 한다”며 “금융당국이 규제를 통해 제2금융권의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으면서 한은을 압박해 정책금리를 끌어내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최경환 부총리가 내세운 가계소득 진작이 현재 한국 상황에서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은 실현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은 5일 최경환 부총리 발언을 환영했다. 서영교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최경환 부총리 강연 내용과 달리 기재부는 최근 삼성전자의 임금동결에 대해 토 한마디 달지 못했다”며 “가계소득 증대의 정책적 의지가 박약하다”고 비판했다. 

   
▲ 경향신문 5일자 아침신문 1면.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최경환 부총리가 말하는 ‘임금인상’이 그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금동결’을 선언한 기업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임금 격차를 줄이는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을 바로 실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 당시에도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를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 내놓은 정책은 부동산 시장 활성화였다. 번번히 서민에게 빚을 내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효과는 미미했다. 

신원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최경환 부총리가 제시한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본심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지난해 7월 기재부 장관 취임 후 한 말과 정책은 완전히 반대였다”고 비판했다. 

신원기 간사는 “이달 말 연말정산 결과를 보면 이번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이 민심 달래기에 그칠지 영혼을 담은 발언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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