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담이다. 그러나 미담 하나 소개하려 함이 아니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강서구청 인근엔 작은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 중에 ‘정원이발관’이 있고, 그 옆엔 한 평짜리 구두닦이 부스가 있다. 올해 예순인 이발소 주인 박경준 씨와, 그 보다 열 살 위로 일흔인 구두미화원 문교술 씨의 사연(부산일보 2월 16일자 기사)을 들어보자. 

23년 전 어느 날 문 씨가 대저동에 나타났다. 누추한 입성에 걸음걸이도 이상했고, 사람들 말도 잘 못 알아들었다. 문 씨는 선천성 청각장애와 언어장애, 복합장애였다. 그가 구두를 닦겠다며 거리를 오갔지만, 사람들은 부랑자 보듯 외면하기 일쑤였단다. 이발 무료봉사를 다니면서 수화를 조금 익혔던 이발사 박 씨가 보기에 너무 딱해 수화로 말을 건 게 이들 23년 우정의 시작이다. 문 씨와 말이 안 통하는 손님이 있으면 박 씨가 나서서 ‘통역자’가 되어주었고, 추운 겨울 문 씨가 떨며 일하는 게 안쓰러워, 건물주 양해를 구해 이발소 옆에 간이 부스도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니 ‘되어준 게’ 아니라 ‘되었’다. 이발사 박 씨의 말을 잠시 들어본다. “싸우기도 엄청나게 싸웠다. 문 씨는 억척스럽지만 고집도 세다. 괜히 오해를 사서 손님과 싸우면, 내가 문 씨를 나무라고 그게 도로 우리 싸움이 된 적도 많다”. 구두미화원 문 씨의 집은 부산 시내 범일동이란 곳인데, 대저동 일터 까지 30km는 족히 되는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단다. 그게 너무 위험해보여서 박 씨는 한사코 말렸지만, 끝내 고집을 꺽지 않더란다. 위험한 줄 알지만 오토바이를 탈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터이다. 정부지원금이 나온다지만, 장애인용 자동차가 어디 한 두 푼인가. 박 씨는 자기 돈을 헐어 조금 더 큰 오토바이를 사줬다. 조금 더 큰 오토바이면 조금이라도 안전할 것 같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발사가 얼마나 큰 돈을 벌겠는가. 

문 씨는 억척과 성실로 역경을 이겨냈고, 요즘은 하루 몇 만 원 벌이는 하는, 소박하지만 어엿한 가장 노릇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4년 전, 그만 집에 불이 나는 횡액이 닥쳤지만, 가족과 이웃의 합심으로 이겨냈다. 지난 1월, 이발사 박 씨가, 서민들에게는 웬지 주눅부터 들게 하는 관청을 찾아갔다. 강서구청 민원센터. 문씨의 구두미화 부스가 너무 낡아서 비가 들이치는 등 일하기에 악조건인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였다. 고맙게도 구청 담당자는 낡은 간이부스를 흔쾌히 증축해줬단다(이런 공무원도 있다). 지난 10일, 새롭게 단장한 구두미화 부스를 보며 구두미화원 문 씨는 “힘닿는 대로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구청에 화답했다. 이발사 박 씨는 “나도 셋방살이하는 주제에 뭘 크게 도와주었겠느냐. 문 씨의 의지가 강했다.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겐 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필자도 현역 기자시절 경험한 일이지만, 좋은 일 하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대개들 이렇게 겸손하다. 

   

▲ 부산 강서구 대저동 정원이발관에서 이발관 박경주 사장(왼쪽)과 이발관 옆에서 구두닦이 부스를 운영하는 문교술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부산 강서구청 제공

 

 

박 씨와 문 씨의 오순도순, 투닥투닥 얘기를 읽다보니 웃음 끝에 코 끝이 찡해졌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런 게 아니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목표였다. 기득권층의 반발과 보수언론들의 묻지마 식 흔들어대기로 결국 그는 그 꿈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꿈꾸는 세상은 이런 거 아니겠는가. 

글의 들머리에 “미담 하나 소개하려 함이 아니”라고 썼다. 각사 사회부 데스크가 기자들에게 취재지시 내려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면 이런 미담은 오늘 당장이라도 몇 건 발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여야 지도부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복지 담당 공직자들에게 말한다. “무능하면 정직하기라도 하라. 그것도 힘들면, 겸손이라도 하시라”. ‘정치’가 못하는 일을 시민들이 자기들끼리 오순도순 해내고 있다. 수 십 년 전부터. 그것도 조용히. 

   

▲ 이강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 앵커

 

 

그들은 선택적 복지니 보편적 복지니 하는 말, 잘 알지도 못하고, 굳이 알려들지도 않는다. “증세없는 복지”와 “그건 거짓말”이라는, 정답이 빤히 보이는 문제를 두고 수 년 째 입씨름만 벌이는 여의도 한량들과 청와대 나리들이 한심하다 못해 이제는 아예 관심 조차 없다. 대기업 곳간에 쌓여있는 수 백조 원의 유보금, 이명박정부 시절 이래 추진해온 고환율정책과 법인세 인하의 과실이다. 그간 수 많은 ‘문 씨와 박 씨들’이 성실히 일해서 낸 세금으로 나라 경제 운영해왔다. 발생할 거라던 ‘낙수효과’는 온데 간데 없다. 대기업이니까 세금 무조건 더 내라는 얘기가 아니다. 조세는 공평한지, 과실 배분은 적정한지를 묻는 것이다.  

혹시 부산 갈 일 있으면 강서구청 옆 박 씨 이발소에 가서 머리 깍고, 문 씨에게 들러 구두 뒷축 갈고 반짝반짝 ‘불광’도 내봐야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