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는 적지 않다. 그런데 특정 모티프를 다룬 영화가 적지 않다는 것은 딜레마가 된다.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라는 긍정적인 요인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영화와 차별되는 새로움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가운데 시간 여행을 다룬 <백 투 더 비기닝>도 이 딜레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살다가 가끔 시간 여행을 꿈꾸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지금의 처지보다 더 나은 현재나 미래를 위해 과거를 수정하고픈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시간 여행에 대한 소박한 욕망은 이 지점에서 형성되지만, 그것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미래와 직면해야 하는 난처함과 닿아있다. 과거는 무한히 반복되지만 (그 과거에 기반을 둔) 현재는 반복을 거듭하지 않고, 단 하나의 현재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과거가 원인이 된 현재가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예상할 수 없는 현실과의 대면. 시간여행을 다룬 많은 영화들도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지금, 주어진 순간을 즐기면서, 또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한다. 이 뻔한 패턴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터미네이터>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미래 시점에서 바라본 과거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래에서 온 인물은 현재의 여인과 연을 맺어 오히려 미래가 현재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이 시간 고리를 이어붙이면 미래가 현재의 원인이 되고, 다시 현재가 원인이 되어 미래가 되는 순환구조로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직선적 시간 고리를 가볍게 넘어서버린 것. 그러니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은 기존 영화와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와 다른 길을 가려면, <어바웃 타임>처럼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혜안을 선사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수정해 현재에 개입해 들어가지만, 변화된 현재는 수많은 현재의 ‘가능태들’ 가운데 단지 하나의 현재이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현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어바웃 타임>도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기존 영화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네 삶은 출생과 결혼, 장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단계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개인은 가족이 되고 사회 구성원이 되면서 인생이라는 의미를 파악해 간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를 때로는 멜로적 감성으로, 또 때로는 코믹적 상황으로 담아내 결국 묵직한 감동을 부여한다.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이라는 SF 코드를 빌려오지만, 전혀 SF 영화가 아니다. 아예 다르게 변용한 아이디어의 승리라고 할까? 

   
 
 

딘 이스라엘리트 감독의 <백 투 더 비기닝>을 보면서 시간 여행을 다루는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영화는 과거를 재구성하는 영화, 특히 과거의 시작점(Back to the beginning)을 재구성하는 영화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데이비드는 수재이지만 가난한 환경 때문에 장학금을 타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하고, 몰래 사랑하는 여학생도 있다. 데이비드의 억눌린 문제를 풀어주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연구하던 타임머신이다. 아버지처럼 명석한 두뇌와 끈질긴 의지를 지닌 그는 결국 실험에 성공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복권에 당첨되어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멋지게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해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학교 시험도 좋게 봐 성적을 올리는 등 이들 ‘패거리’는 고3 학생에게 어울릴 만한 행동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통제가 쉽지 않은 법. 더 멋진 현재를 위해 혼자 과거로 드나들던 데이비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과 부딪치게 된다. 자신이 바꾼 과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생겨버린 것.  

이렇게 보면, 결국 이 영화도 기존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의 억눌림을 시간 여행으로 풀어준다는 것 (그래서 영화의 볼거리는 그들이 락 페스티벌에서 즐기는 것) 정도가 된다. 야속하게 말하면, 그 외에는 시각적 볼거리도 부족하고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없으며, 삶에 대한 예리한 성찰도 없다. 단지 시간 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차용했지만, 차용하는 정도에 그쳐 버렸다고 할까? 

   
 
 

나는 이 영화가 ‘아버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집은 가난하고 어려웠다. MIT에 입학하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한 데이비드는 고민이 많은데, 결국 데이비드에게 과거로 가게 만드는 것도 살아생전 아버지가 만든 타임머신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연애도 하고 욕망도 채울 수 있었지만, 아버지와 대면한 뒤 바로 현실로 리턴해야 했다. 결국 영화는 아버지가 사라진 뒤 ‘유사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는 인물의 ‘아버지 찾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왜 아버지가 갑작스런 교통 사고로 죽었는지 원인을 밝히는 스릴러가 되었다면, 오히려 좀더 색다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도 든다. 시간 여행을 다룬 한국영화 가운데 <동감>은 흥행과 비평에 성공했고, <열한 시>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두 영화가 이토록 극명하게 갈라선 지점은 어디일까? 역설적이게도 <동감>은 SF적 요소가 거의 없는 멜로드라마였고, <열한 시>는 ‘멜로드라마 전담 감독’이 연출한 SF 스릴러였다. 결국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의 핵심은 어떻게 시간 여행이라는 모티프를 영화 속에서 녹여내느냐에 달렸다. 그 부분의 고민이 깊지 않으면 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백 투 더 비기닝>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SF 요소를 약화한, 잔잔한 가족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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