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보육교사의 폭행 장면에 분노하고 정치권이 너나할 것 없이 대책마련을 약속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다. 여론에 밀려 ‘CCTV 설치’라는 졸속 대안을 내놨다가 아동학대 대책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 3일 열린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재적의원 171명 중 83명만이 찬성표를 던졌고 반대가 42표, 기권이 46표였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는 따르면 모든 어린이집은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해야 하고 영상은 최소 60일 이상 저장해야 한다.

CCTV 의무화로 대표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본회의 전날인 2일 여야 지도부가 4+4 회담을 통해 처리하기로 합의한 법안이다. 새누리당은 어린이집 폭행사건 직후 아동학대 근절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CCTV 설치 의무화를 추진했다. 아동학대 방지책을 내놓겠다던 정치권의 공언이 무색해진 셈이다.

   
▲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CCTV 화면. SBS 뉴스 갈무리
 

여야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민현주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통과를 하지 못한 데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새누리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안전한 보육 환경 확보를 위한 입법 추진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4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이렇게 여야가 합의하고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된 법률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어 매우 유감스럽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아동학대 방지와 안전한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재입법을 추진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강조했다. 여야 모두 ‘재입법 추진’을 약속한 셈이다.

그러나 여야가 논란이 많은 법안을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영유아보육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많은 우려가 나왔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3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CCTV를 설치하면 학부모 갈증, 주문을 다 해소해주는 것 같지만 보육교사는 기본권이 침해된다"며 ”이렇게 엄벌주의로 가려면 가정폭력 방지를 위해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하란 것인가. 논리가 너무나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원래 법안에는 CCTV와 ‘네트워크 카메라’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법사위를 거치며 네트워크 카메라는 빠진 채 본회의로 상정됐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3일 본회의 반대토론을 통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들어서 교실에 CCTV 설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어린이집 CCTV 설치는 타당한 대책이 아니다”며 “아동 학대사건이 터지니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CCTV 설치 의무화가 미봉책이라며 반대 표결을 했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는 CCTV 설치 의무화 외에도 다른 내용도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육교직원의 양성 및 근로요건 개선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된다. 또한 보육교사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도록 보조교사 등을 두고, 휴가나 교육 등으로 공백이 생겼을 경우 대체교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 지난 2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참여연대 등 7개 단체는 정부가 보육에 대한 책임을 학부모들에게 떠넘겨 허리가 휜다는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참여연대 제공)
 

하지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여러 논란이 있는 CCTV 의무화를 영유아보육법의 전면에 내세워 보육교사 부담 경감 대책 등까지 무산됐다는 뜻이다. 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부결 이후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졸속적이고 미봉적인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입법부의 일침”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다수 의원들의 의사가 확인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대표를 던진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CCTV 설치 의무화를 제외한 다른 내용은 대부분 찬성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법안 설명을 할 때도 CCTV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오더라”며 “보육시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보육현장의 질을 재고시키는 대책이 아니라고 봤고, 사후에 수사를 위한 대책이지 예방대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반대표를 던진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영유아보육법의) 다른 내용에 대해 크게 문제제기한 것은 없었고, 전체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냐에 대해 의문이 많이 제기됐다. 그것 한 가지 때문”이라며 “그런 방식으로 교육의 질이 높아지겠느냐는 것에 대해 ‘그건 아니다’는 공감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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