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달관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월 23일부터 3일에 걸쳐 정규직 미련도 버린 채 작은 소비와 현실의 행복에 만족하는 ‘달관세대’에 대한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달관세대’는 ‘88만원 세대’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에 대한 조선일보식 뒤틀기에 가깝다.

달관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차용한 개념이다. 사토리(さとり)란 ‘득도, 깨달음’으로, 1980년대 후반~90년대 일본에서 태어난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일본 청년들이 현실의 행복을 추구하며 ‘안분지족’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일보는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자급자족하는 몇몇 청년의 사례를 통해 달관세대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 이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비현실성이다. 조선일보 달관세대 기획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소위 서울 명문대생들이다. 예컨대 서울대 4학년인 오아무개(26)씨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강남 대치동에서 논술 첨삭으로 52만원을 번다. 그러나 오씨와 같은 일을 하려면 학력자본이 필요하다. 대다수 비명문대 혹은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은 이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

   
▲ 2월 23일자 조선일보 11면
 

조선일보가 사례로 인용한 청년들은 하나같이 집이 있고, 어느 정도의 자본을 갖추고 있다. 이들이 정규직을 포기하고 달관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다. ‘학자금 대출’의 부담도 없다. 지방에서 올라와 집세와 생활비, 거기다 학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은 달관세대가 될 수 없다는 것.

조선일보 기사엔 명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이씨가 나온다. 이씨는 모 금융기관 인턴으로 일하며 월 100만원을 번다. 월세 25만원, 저축 20만원을 뺀 55만원이 생활비다. 영화관은 못 가지만 IPTV와 인터넷 다운로드로 문화생활을 즐긴다. 주말 오후엔 여자 친구를 만나고, 2~3만원의 데이트 비용을 나눠 낸다. 석 달에 한 번 8만 원 정도의 쇼핑을 한다.

일단 서울에서 월세 25만 원짜리 집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월세 25만원이라면 보증금이 매우 비싸다. 이는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화생활의 수단인 TV와 노트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즉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미 ‘달관할 만한’ 자본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보증금에 월세를 대고 대출금까지 갚으면서 연애를 하고, 병원비 등을 감당하며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이혜정 알바노조 사무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아름다운 단편영화 하나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소수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일 수 있지만 일반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월세 25만 원 옥탑방에 살아봤는데 그거 집 아니다. 텐트치고 살아야하고 겨울만 되면 수도가 얼고 정말 춥다”며 “현실의 지지부진한 면에 대해서는 언급 안 하고 소박한 삶인 것처럼 묘사하는 게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현실의 몇 가지 사례를 과도하게 일반화했다”며 “설사 달관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해도 달관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맥락이 빠져 있다. 달관하는 게 아니라 달관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토리 세대를 다룬 책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의 한국어판 해제를 쓴 오찬호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일본에서는 ‘사토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최저임금도 (한국보다) 높고, 취업이 힘들지만 대학생이 다 토익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비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통해 살 수 있는 조건이 있다”는 것.

오 연구원은 “한국에서는 달관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초인간적인 사례들을 슬기롭게 사는 것 마냥 포장하는 것은 문제”라며 “달관한다는 말에 당장 ‘니가 그러니까 안 되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한국사회”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달관세대 기사에도 실제로 ‘니들 부모가 불쌍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 2월 24일자 조선일보 11면
 

비현실성보다 더 큰 문제는 달관세대 프레임의 효과다.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은 2월 27일 칼럼에서 달관세대 기획에 대해 “알바생에게 이들처럼 만족하고 살라고 꼬드긴다는 반응”이 있다며 “음모론적 시각”이라고 규정했다.

꼬드기진 않겠지만 달관세대론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로 대표되던 비극적 삶을 긍정적이고 대안적 삶으로 변모시킨다. 이혜정 사무국장은 “이 기사 이후에 모 언론에서 청년들을 계약직으로 뽑아야 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런 식의 주장이 꼬리를 물것이라 생각한다”며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원하는 것이 문제라는 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찬호 연구원은 “조선일보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과거에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조선일보가 소개하는 사례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늘 있던 자유분방한 청년들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왜 조선일보는 늘 존재하던 청년들을 새로운 세대라 부각시킨 것일까.

오 연구원은 “달관세대 담론은 ‘사회가 힘들지만 이런 친구들도 있다’, ‘왜 너희들은 투덜거리기만 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냐’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선일보는 88만원 세대론이 유행하자 ‘세계로 뻗어가는 G세대’ 담론을 내놨다. 글로벌 시대니까 열심히 하면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었는데, 이번 달관세대론에도 이런 관점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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