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나운서의 중심을 다시 세울 때입니다.” 

지난 23일 제16대 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과 제18대 KBS아나운서협회장에 취임한 윤지영 KBS 아나운서의 말이다. 첫 여성 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을 맡은 윤지영 아나운서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나운서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지영 아나운서를 2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하는 40여분 동안 ‘아나운서다움’을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 “‘아나운서다움’이 진부한 코드가 돼버렸다”고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운서다움을 중심으로 가져가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방송 환경이 굉장히 다변화 됐어요. 예전에는 바른 우리말을 쓰고 방송을 하면 아나운서로 봤죠. 하지만 지금은 방송 채널도 많아지고 1인 인터넷 방송도 생기면서 방송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졌거든요. 그런 와중에 방송인, 아나운서라는 중심이 사라진 느낌이 들어요.” 

전문 MC와 연예인, 아나운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아나운서의 역할이 줄었다는 것도 이런 인식에 한 몫을 했다. 1997년 KBS 24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윤지영 아나운서의 동기는 12명. 올해 KBS가 선발한 신입 아나운서는 남녀 각 1명씩 단 2명이다. 전체 아나운서실 인원은 유지되지만 신입 아나운서는 점점 줄어드는 수순이다. 

   
▲ 윤지영 KBS 아나운서.
ⓒ윤지영아나운서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아나운서는 ‘뉴스 진행’이라는 명확한 상이 있었으니까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도 필요한 시대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나운서 역할이나 능력이 다양해지면서 정작 아나운서다움이란 건 없어졌더라고요. 대체 가능한 직업군이 되면서 우리 설 자리를 오히려 좁힌 거죠.”

그가 강조하는 아나운서다움이란 “방송 기본을 지키고 한국어 관련 업무와 아나운서라는 외연 확대에 나설 수 있는 기본을 갖춘 방송인”이다. 그는 “앵무새처럼 예쁘게 대본만 읽는 게 아니라 방송에서 쌓은 노하우나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색’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 색깔’의 중요성을 느낀 건 지난 2010년 1월이다. 박대기 기자가 눈사람이란 별명을 얻던 날 윤지영 아나운서도 KBS2 ‘생방송 오늘’에서 현장 리포트를 하며 ‘폭설 속 미녀’, ‘눈의 여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윤지영 아나운서는 “입사 11년차쯤 됐던 때”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당시 육아 휴직 등으로 2년간 방송을 떠났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개편 때가 아니라 고정출연할 방송을 낙점 받지 못한 상황에서 대부분 신입 아나운서 몫이던 현장 리포트가 그에게 맡겨졌다. 

“처음에는 신입 아나운서 역할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현장 리포트를 한번 하고 나니까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제 방송의 전환기가 됐죠. 방송 경험이 있으니까 대본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제 경험을 녹여내다 보니까 대본 내용을 잘 전달하는 아나운서에서 ‘내 색깔을 찾은’ 아나운서가 됐죠.”

   
▲ 윤지영 아나운서가 2010년 1월 4일 방송된 KBS2 '생방송 오늘'에서 눈을 맞으며 방송 리포팅 하고 있다. '생방송 오늘' 화면 캡쳐.
 

 

그렇게 하루 출연이던 현장 리포트를 내리 3년 가량 맡았다. 윤지영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란 어떤 방송에든 잘 녹아들 수 있는 팔색조 같은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색깔을 방송에 낼 수 있느냐가 아나운서의 중요한 덕목이란 생각이 든다”며 “제가 지향하는 방향이고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한국 아나운서협회장을 맡으면서 강조하는 것도 같은 점이다. 그는 “한국아나운서연합회는 그동안 남자 회장이 맡으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외연을 많이 확대했다”며 “지금은 아나운서다움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지영 아나운서는 한국아나운서협회를 통해 ‘아나운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 세미나와 출판 등 사업에 힘을 실을 생각이다. 

윤지영 아나운서가 한국아나운서협회장에 취임하던 지난달 23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했던 강용석 전 의원에게 과태료 1000만원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윤지영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를 대하는 강 전 의원과 같은 인식을 가진 이들에게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이 잘못”이라며 “그런 분들은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사회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KBS아나운서협회에서 할 일은 ‘화합’이다. 윤지영 아나운서는 “그동안 KBS 내부의 갈등이 있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지친 사람도 많다”며 “평범한 중견 아나운서인 제가 아나운서실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8개 방송사 아나운서가 등록된 한국아나운서협회는 비교적 규모가 큰 지상파 방송 3사 아나운서협회장이 순번제로 맡는다. 앞선 회장은 신동진 MBC아나운서협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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