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바로잡기’의 상징과 같았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8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법을 처음 제안한 이후 929일 만에 빛을 보게 됐다. 2013년 8월 국회에 제출된 지 1년 7개월 만이다. 김영란법의 취지는 공무원이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게 함으로써(100만 원 이하는 직무관련성 있을 경우) 공직사회의 부패문화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공직사회의 접대문화에 대대적인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각종 청탁과 로비 등이 처벌대상이기 때문이다. 공직자 본인과 배우자를 상대로 한 음주 및 골프접대, 명절선물도 금액에 따라 모두 불법이 될 수 있다. ‘벤츠여검사’ 사건처럼 고액의 향응을 제공받아도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처벌을 피하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

   
▲ 1월 20일자 뉴스타파 갈무리
 

국가 청렴도를 높이고 공직사회 부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의 취지를 부정하는 의견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올해 초 김영란법이 정무위원회를 거치면서 적용범위가 사립학교 교원 및 언론사로 늘어났고, 이 점이 김영란법이 법제사법위원회에 발이 묶이는 원인이 됐다. 여야는 적용범위에 있어 정무위 안을 유지하기로 합의했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남용이 대표적인 우려사항이다. 오경식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지난달 23일 국회 법사위 공청회 자리에서 “넓게는 국민의 3분의 1 정도가 법의 대상이 되는데, 경찰국가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경찰 등 수사기관이 공직자나 언론인, 교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범죄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를 작성할 경우 언제든지 국가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언론 길들이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청회에서 “자칫 법률에 위배된다는 혐의를 이유로 건강한 언론을 수사하고, 그 안의 서류 등을 압수하면서 수사기관이 언론기관 내부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3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법 집행 과정에서 다시 또 말하자면 미운 언론에 대해 칼날이 휘둘러지고, 또는 전교조 교사들에 대해 칼날이 휘둘러지는 등 편파적으로 법이 집행될 가능성을 염려 하시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들은 저희가 공정하게 법 집행과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잘 감시해야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평성 문제도 남았다. 공직자 못지않은 공공 영역이라는 이유로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은 포함됐으나 시민단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립학교 재단 및 이사장의 경우 적용대상이 아니었으나 3일 법사위를 거치면서 포함됐다. 향후 법 적용 대상이 늘어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지난 23일 공청회에서 “적용범위는 더 확대될수록 좋다. 필요하다면 시민단체도 넣어야 한다”며 “다만 가이드라인과 적용 범위가 필요하기에 언론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 지난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진행 중인 이상민 위원장. ⓒ 연합뉴스
 

김영란법 대상을 공직자와 그 배우자로 한정한 것도 논란이다. 당초 김영란법 대상은 공직자와 그의 민법상 가족(배우자와 직계혈족, 형제자매,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등)으로 매우 넓었으나 적용 범위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가족의 범위가 배우자로 한정됐다. 그러나 실제 청탁 및 로비가 배우자 뿐만 아니라 부모나 형제, 처남 등 다른 가족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일 의원총회에서 “부모자식, 형제자매간에 사실상 고발을 하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지적했다. 그래서 신고의무를 처음에는 다 빼려고 시도했는데 신고의무를 다 빼고 나니 가족이라는 걸 두는 의미가 전혀 없게 되었다”며 “이렇게 고침으로써 법 적용 대상이 약 1800만 명에서 300만 명 정도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여야가 당초 유예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린 것을 두고는 정치권이 향후 김영란법에 다시 손을 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당초 계획대로 유예기간이 1년이었다면 2016년 3월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지만, 유예기간을 늘리면서 2016년 9월로 시행 기간이 미뤄졌다. 정치권이 2016년 4월 총선을 치르고 난 뒤 김영란법에 손을 대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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