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가 좋다 좋다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아예 이쪽으로 이사까지 해 버리니까, 충청도 출신 친구들까지 충청도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했다. 단순히 서울내기로 지내다가 서울의 온갖 북적거림에서 벗어난 게 좋은 걸까. 인구 천만이 바글거리는 도시에서 50만인 곳으로 옮겨왔으니 그 매력이라고 하면 납득이 가겠는데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남들은 여름이면 거기서 얼른 도망치고 싶어하는 고향 대구에서 여름을 보냈는데, 사람 없이 한산하고 여유로운 것은 대구가 훨씬 더하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남한 제 3의 도시’라고 묘사될 만큼 한때 부흥했다가 사그라들어 그런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란 내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북적거림과 지금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한갓진 여유로움을 좋아했더라면 대구로 갔을 것이다. 서울에서 원룸을 얻을 값으로 방이 몇 개 있는 집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것도 대구도 마찬가지다.

그럼 충청도 사람을 좋아하느냐, 사람 좋아하기로는 전라도 사람과 전라도 방언을 좋아한다. 주변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죄다 전라도 사람인 건 둘째치더라도 ‘밥맛 없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큰 일상적 불행을 뜻하는 말이던가. 밥맛이 얼마나 사람 사는 데 중요한데, 밥맛 있게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행복할 것이다. 전라도, 그것도 광주에 처음 갔을 때 고깃집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될까말까 하는 남매 둘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온 네 가족이 끊임없이 먹는 얘기만 하는 것이다. 어디는 어느 집이 맛있고 뭐는 이렇게 먹어야 되고 어쩌고... 음식에 전혀 관심 없는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고기를 다 구워 먹은 다음 알뜰하게 밥 하나, 김치말이국수 하나를 그 집 아들이 주문해 온 가족이 나눠 먹는 걸 보면서 밥맛이야말로 세상 사는 맛이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먹어 온 경상도식 김치는 그냥 잔디를 뜯어다 겉절이 양념한 것이 아닌가, 하는 몇 가지 의문까지 떠올랐을 정도니 이주를 하려거든 전라도로 갔을 법하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충남에 있을까, 나도 잘 모르다가 까진 발에 붙일 밴드를 사러 약국에 들렀다가 알았다. 윤일병 사건 때 한창 시끄러운 시절, 약국에서 약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약사 아저씨가 소화제를 사러 온 군인을 보더니 안쓰러운 얼굴로 한창 동안 동생 보듯 하고 있더니 군인을 향해 음료수를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군대, 힘드시지? 여기가 거기려니, 하면서 그저 한화팬같은 마음으로 사셔. 어디에 있던지 그냥 한화팬같은 마음으로 살면 그리 힘들지 않으니까네, 그저 한화팬같이 사셔. ” 반말도 아니고 온말도 아닌 투로 하는 그 충청도 말! 나도 사실 그저 한화팬같이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한화팬처럼 매사에 산다는 것은 어찌나 힘든지. 약사 아저씨의 덧붙임으로는, 그것은 부처님이 되는 길이라 한다. 그러니 이렇게 힘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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