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의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3월 3일 본회의에서 정무위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고, 새누리당은 오늘 저녁 의원총회에서 끝장토론으로 당론을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부 기류는 복잡하다.

흥미로운 것은 특정 사안을 놓고 통상적으로 여야가 대치했던 과거와는 달리 김영란법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무위와 법사위가 찬반으로 갈려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상황은 국회가 정파를 떠나 나름 순수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무위는 국민여론을 적극 반영해 김영란법에 합의했고, 법사위는 법리적인 문제를 꼼꼼하게 따져 법안의 완결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사위의 논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 법사위원 대다수는 대체적으로 국민여론을 의식해 김영란법에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못하면서도 이런저런 법리문제를 제기하면서 딴죽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김영란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를 공언해 왔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적극적으로 김영란법의 문제점만을 짚어 강조해 왔다.

지난 23일 열렸던 법사위 주도의 공청회는 김영란법에 대한 성토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사위는 공청회에 앞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 검토보고’라는 제목의 법사위 검토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법률안의 자체 완결성 결여’, ‘공직자의 범위 확대’, ‘형벌의 명확성 원칙 위배’,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 위배’, ‘업무소관의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정무위 법안에 대한 법사위의 반대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공청회에 나온 진술인들 다수의 의견 또한 법사위 보고서의 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술 중에는 김영란법 도입이 서민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새누리당의 정갑윤 의원은 연대별 경제성장률을 거론하면서 김영란법이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거나 세월호 특별법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와 맥을 같이하는 주장이다. 급기야는 부패로 인한 사회적 비용보다 이를 퇴치하는데 드는 행정비용이 더 많이 들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안타깝게도 법안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은 반면, 이를 극복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한편, 김영란법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에도 예전에 보지 못했던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언론은 대부분의 논쟁적 사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경우 언론 일각에서는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반대하는 기류를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진통을 겪었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언론은 김영란법을 조속히 만들라고 정치권을 압박했다. 그런데 올해 1월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언론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원들이 포함된 정무위안이 법사위로 넘어오자 보수와 진보에 관계없이 언론 일각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은 사설과 칼럼을 통해 노골적인 반대 의견을 펼쳤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또한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김영란법에 대한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이런 상황에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입법 제안한 후 3년을 끌어온 김영란법의 처리와 관련해 차분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리적 차원에서 김영란법 논쟁의 주요 요소들은 지난 23일의 공청회에서 언급된 사항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거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김영란법에 반대하는 논거와 주장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면 김영란법은 언론인의 포함여부와 관계없이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제가 되었던 논거와 주장들이 언론인 뿐 아니라 김영란법의 핵심 적용대상인 공무원들에게도 똑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MBC는 부산의 한 건설업자가 57명의 전현직 검사에게 지속적으로 성상납, 금품수수 등의 스폰서 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고 이를 피디수첩을 통해 방송했다.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스폰서 검사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향응과 접대를 받고 100만원을 수수한 것은 분명하지만 직무와 관련됐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김영란법은 이런 사회현실 속에서 제안되었다. 금품수수와 향응의 대가성과 직무연관성은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한 입증하기 어렵다. 그것은 국민여론이 김영란법 도입에 적극 찬성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입법 논의과정에서 법안 적용대상에 공무원뿐 아니라 언론사 임직원과 사립학교 교원들을 포함시켰다. 그 결정에 대해 정무위는 입법정책적 판단이라고 했다. 언론을 포함시킨 것이 김영란법을 좌초시키기 위한 정치권의 음모였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무위 원안의 위헌여부에 대해서는 당시 대한변협 등 수많은 법률 전문가와 공법학자 등이 “위헌 소지 없다”는 판단을 이미 내린 상태이다.

법이 모든 사회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부작용 없는 약이 없듯이 법 또한 일정한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영란법은 이 시점에서 시대가 요구하고 국민이 바라는 법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최선의 해답은 제기된 몇 가지 문제들을 최대한 보완하는 선에서 정무위 원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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