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온 어떤 프로그램 보다 제일 훌륭한 프로그램이라 자부한다.”

이는 2009년 봄, SBS 리얼리티 짝짓기 프로그램  ‘짝’의 출연자가 방송 녹화중 사망한 사건에 관련한 세미나에서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맷을 창조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가장 훌륭한 것은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드는 처지에서는 들어간 노고와 소모된 에너지를 생각한다면,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참여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고통이 가장 강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정말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바대로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출연자라면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은 출연자일수록 고통의 순간들을 대개 잘 견디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경찰은 강압이나 협박이 없었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곧 폐지되었다. 이것으로 모두 끝난 것일까. 재발의 여지는 있었다. 더구나 이때 짝에 우호적이었던 문화심리는 언제든 재발의 토양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이 프로의 폐지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시청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송가의 많은 이들도 사망한 참여자보다 제작진에 동정적이었다.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여자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사실상 무의식적으로 공포스런 선입관이 작용하고 있었다. 하나는 죽을 일이 있으면 왜 하필 방송 제작현장에서 목숨을 끊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느냐는 관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방송 프로그램의 성격을 모르고 출연했느냐는 것이었다. 뭘 몰랐냐는 말일까. 여기에서 해당 프로그램은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고, 선택여부에 따른 정신적인 자극이 예상되므로 대비를 하고 가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장에 직접 참여해본 당사자들의 입장은 아니었고, 대개 제3자의 생각이나 느낌이었다. 참여자에 대한 편견일 수 없다. 대부분의 사건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촉발된 상황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오로지 출연자 개인에게 책임을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고, 언제든지 같은 문제를 발생할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방송 매체에 출연하는 일반인들은 연예인이나 전문 방송인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 제작 와중이나 제작 후에 상당히 다른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인 외상등에 대해서는 물리적인 육체의 훼손을 당하는 것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방송 제작 주체의 책임과 의무에 버금가야 한다. 하지만, 대개 이러한 책임과 의무는 도외시된다. 더구나 연예인 지망생들이라해도 안심할 수 없다. 이들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일반인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비록 ‘짝’ 이 폐지 되었지만 수많은 참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특히, 전문 연예인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도 많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언제든 참여자들의 정신적인 외상을 건드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연습생인 경우에는 더 절체절명의 심리가 적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걸그룹 지망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걸그룹 지망생의 이름은 소진으로 카라의 멤버를 뽑는 MBC뮤직 ‘카라 프로젝트: 더 비기닝’에 출연했지만, 최종 탈락했다. 기획사에서 무려 4년 동안 고된 연습생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중요한 청소년 시기가 가수 데뷔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한 세월이었을 법했다.

   
MBC 카라프로젝트 : 더 비기닝의 장면 
 

이 사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일 것이다.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힘들지만, 그 원인에 카라 멤버에 들지 못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결과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억측은 금물이지만 만의 하나라도 원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인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그대로 넘어가기 바빴다. 인터넷에서는 악플이 창궐했다. 연예인 지망생에 대한 편견이 작용한 탓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획사 소속의 연습생이 새롭게 선을 보이는 걸그룹 선발대회에 나갔다는 점이다. 연습생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최종 탈락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더욱 이에 주의해야 한다. 나아가 방송에 출연전에 선택 당하지 않은 것과 출연과 동시에 퇴출이라는 낙인을 받은 것은 그 충격의 강도면에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연예기획사나 방송사, 제작사 등 어디에도 그들의 정신적 상황을 살펴주는 곳은 없다. 더구나 이 지망생은 탈락이후 계약을 유지 못했다. 더욱 충격이 정신적인 외상을 크게 만들었을 법하다 . 방송 제작 현장은 육체적인 부분보다 정상적인 장애나 외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알려진 것이 연예인들의 공황장애이다. 따라서 앞으로 방송 관련 인력을 공급하거나 공급을 받는 해당 당사자들에게는 이런 정신적 장애나 외상을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런 장애나 외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기획 제작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한 계속 목숨이 희생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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