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LG그룹으로부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50억원을 트럭 째로 받는 등 삼성, 현대, SK 등 재벌기업으로부터 823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검찰수사에 의해 드러나면서 생긴 불명예 꼬리표다. 2013년 12월 총선을 4개월 앞두고 터진 이 ‘차떼기’ 사건으로 인해 당시 한나라당은 존폐의 위기상황까지 내몰렸다.

그 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을 얼마 20여일 앞둔 3월 24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취임일성으로 ‘부패척결’을 천명했고 여의도 당사에서 강서구의 천막당사로 옮기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비록 열린우리당에 배패했지만 애초 50석도 나오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무려 121석이나 당선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해 국민들에게 부패척결 의지를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주노동당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양연수씨가 15일 대선자금과 관련 진술하기 위해 대검에 출두하는 이회창 전총재의 출두하는 대검청사 앞에서 방탄국회 해산과 대선자금 차떼기를 비판하고 있다. /백승렬/정치/검찰/ 2003.12.15 (서울=연합뉴스)
 

최근 새누리당의 태도를 보면, 이 같은 ‘차떼기당’ 극복의 교훈을 잊은 듯하다. 세월호 참사는 ‘차떼기’사건 이상으로 국민들에게 관피아, 정피아 등 우리사회 지배집단의 부패구조를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그 세월호 참사는 국회에서 3년 동안 잠자고 있던 부패척결 법안인 김영란법을 깨워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 법의 2월 국회 입법을 약속하고도 막바지에 와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당의 정우택 의원이 위원장으로 정무위에서 여야합의로 통과시켰던 김영란법을 다수의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홍일표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는 언론인과 사립교원이 법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정무위 법안에 “여론눈치만 보고 통과시키는 게 국회가 할 일인가”라며 노골적으로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당대표인 김무성 의원 또한 노골적으로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했다. 김 대표는 2월 27일 오전에 열린 새누리당 의원 총회에서 “김영란법에 찬성하면 선이고, 문제 있다고 이야기하면 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기류가 형성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잘못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과거 분위기에 밀려 통과됐던 '국회선진화법'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경험하고 있고, 공직자윤리법 중 주식백지신탁법은 악법 중 악법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새누리당과 권력층에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법을 사례로 거론하며 반대의사를 드러냈다. 국민여론에 눌려 있던 새누리당 내 반대론자들은 이런 김 대표의 발언에 힘입은 탓인지 총회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새누리당 내의 의견이 모아지지 못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지난 27일 나온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문제 삼고 있는 언론인과 사립교원들의 김영란법 포함 문제에 대해 국민 68.4%가 찬성하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처럼 ‘과잉입법’이라는 의견은 16%에 불과했다. 논란의 당사자들인 언론인과 교사들이 자신들이 포함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사회의 부패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가 너무나 큰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새누리당의 모습은 이런 국민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꼴이다.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구조를 척결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인과 사립교원들을 핑계로 부패구조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수구적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당내에서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요구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것 역시 바로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언론인이나 사립교원들이 적용대상이 된 부분과 관련한 문제 또한 다수의 전문가들이 위헌문제가 아니라 입법정책상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은 우리사회의 부패척결을 위해 스스로 ‘극약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새누리당은 오는 29일 끝장토론을 통해 김영란법에 대한 당론을 정리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과감하게 기득권의 포기하고 자기변화를 꾀했던 2004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끝장토론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반부패법안인 김영란 법의 2월국회 입법 약속을 어긴다면, 새누리당은 ‘차때기당’란 오명을 국민들 마음속에 스스로 되살리는 자살골이 될 것이다.

더구나 27일 한나라당의 차떼기와 무관치 않는 이병기 원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이병기 원장은 대선이 있던 2002년 당시 민주당 이인제 의원의 측근에게 “한나라당에 유리한 역할을 해달라”며 5억원을 전달한 혐의를 받아 처벌을 받았다. 바로 그 5억 원이 ‘차떼기’로 거둬들인 불법 정치자금 중 일부였다. 이래저래 새누리당 정권을 겨냥한 ‘차떼기’란 표현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29일 열릴 끝장토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최종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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