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발표를 앞두고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비서실장에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이 '유력하다', '내정됐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결국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엔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현 회장 내정설을 보도했던 많은 언론들은 사실상 오보를 낸 셈이다.

언론이 오보가 난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현명관 회장이 정말 유력했지만 어떤 이유로 반나절 만에 이병기 국정원장으로 바뀌었다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현 회장은 유력 후보가 아니었을 경우다. 

현명관 회장과 이병기 국정원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반나절 만에 비서실장 임명 대상이 바뀐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이병기 국정원장은 언제 내정을 통보받았느냐라는 질문에 "여러번 사양했다"고 말했다. 최종 발표 전까지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고심 끝에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현명관 회장도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나 "청와대 측에서 따로 통보를 받거나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옛날 삼성에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점 등도 고려해 (언론이) 쓴 것 아니겠느냐"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한 보도는 추측성이었다는 것이다. 현 회장은 "솔직히 신경 안 썼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언론이 서둘러 보도를 내놓으면서 벌어진 헤프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오전까지도 해도 현 회장 내정설은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언론들은 확정되지 않는 사실을 보도하거나 전언을 보도할 때 '알려졌다', '전해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언론들은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현 회장에게 통보했고, 현 회장이 결정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담은 내용을 전하면서 사실상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한 인터넷 매체는 "현명관 내정"이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내걸었다. 석간인 문화일보의 경우 1면에 현명관 회장의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 소식을 보도했지만 이병기 국정원장으로 내정 소식이 뜨자 총기 난사 사고 보도로 1면 기사를 수정하고 1면 하단에 청와대 비서실장 발표가 예정돼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실었다. 

현 회장도 "솔직히 신경 안 썼다"고 했지만 오전 내정설이 퍼지고 기자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지자 이날 오후 2시 30분 한국마사회에서 얼굴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시 넘어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 보도가 뜨자 얼굴 공개 자리를 철회했다. 적어도 이날 오후 1시 전까지 현 회장 자신도 내정설을 전해 듣고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 소식을 전한 문화일보 보도
 

여권 내에서는 오전 현 회장 내정설이 뜨자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반대의 뜻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4월 현명관 회장이 부임한 후 "정(윤회)씨의 딸이 마사회 소속만 사용할 수 있는 201호 마방에 말 3마리를 입소시켰다"며 "월 150만원 관리비도 면제 받고 별도의 훈련을 한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현 회장이 비서실장으로 올 경우 비선권력으로 곤혹을 치렀던 정윤회의 그림자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윤회 그림자'로 인식되면 인적쇄신은 커녕 비선권력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고 국정운력 동력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현 회장만큼은 막아야 했다는 것이다. 

현명관 회장 내정설이 뜨자 이날 오전 인터넷에서도 정윤회와 현명관 회장, 박근혜 대통령을 연결시키는 게시물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현 회장 내정 이전부터 차라리 '비선권력'인 정윤회씨를 비서실장으로 내정하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쏟아냈는데 현 회장이 비서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관계가 다시 부각됐다.

한 언론사 간부는 "마지막에 검증을 하다가 걸린 것으로 보인다. 오전까지만 해도 몇 가지 확인해보면 된다는 식이었다"며 "3월 중동 순방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가 늦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검증된 카드로 간 것으로 본다"고 추측했다.

다만, 이병기 국정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올리면서 곧바로 이병호 전 국정원 2차장을 국정원장으로 발표한 것을 봤을 때 이미 낙점을 해놓고 '깜짝 발탁'을 노렸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병호 전 2차장이 아무리 국정원에서 검증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되지 않은 문제가 불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병호 국정원장" 카드를 가지고 있다가 발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별개로 현직 국정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은 법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인데 직전까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있던 사람을 정권 운영의 최전선인 비서실장으로 내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의 사람이 정부 요직으로 가는 경우 거센 비난을 받을 게 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정원이 정권 보호을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이번 인사도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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