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 절차에서 국회와 KBS 이사회의 역할을 배제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실상 4월 임시국회가 KBS 수신료 인상안 통과 적기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수신료 관련 인상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언론학회는 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연 ‘공영방송 재정안정화 기대효과’ 세미나에서 기존의 미디어학계가 아닌 법학자와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한 논의를 전개했다. 이는 기존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논쟁에서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됐던 ‘공정 방송 확립’ 등 첨예한 논쟁점을 거세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자연스럽게 수신료 인상 필요성 여부에 논의 초점을 맞추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발제를 맡은 고민수 강릉원주대 교수(법학과)는 “현재 수신료를 결정하는 절차는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며 독립적인 수신료 인상 위원회 설립 필요성을 주장했다. 

수신료는 방송법 상 KBS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 승인을 얻어 확정하도록 돼 있다. 이런 절차에 따라 수신료 인상안은 지난 2007년과 2011년, 2014년 세 차례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고민수 교수는 “수신료 인상안이 공정방송 목적에 맞게 경제성과 절약성 여부에 한정해 판단해야 하는데 정치적 상황에 따른 갈등 요소에 의해 좌우됐다”고 되짚었다. 

   
▲ 심재철 한국언론학회장(맨 오른쪽)이 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민수 교수에 따르면 2007년에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KBS의 불공정성과 이념성 문제를 제기하며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무산시켰고 2011년에는 해당 상임위에 상정 됐으나 여야 간사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18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19대 국회에 들어서 지난해 KBS가 수신료 인상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했지만 같은 해 초 감사원 감사 결과와 ‘세월호 국면’에서 관련 보도가 정치 쟁점화 되면서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고민수 교수는 ‘수신료 금액의 1차적인 결정권한을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독립된 위원회에 부여하고 국회가 이를 확정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한 1999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인용하며 ‘수신료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민수 교수는 “수신료산정위원회는 설치부터 기관의 임무·과제 및 수신료 인상안 평가·검토 절차 등에 대해 국회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이런 내용이 법률에 보장돼야 한다”며 “위원회 인적 구성도 국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추천이 아니라 경제·프로그램 평가·회계 등 전문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담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된 ‘부담금운용심의위원회’가 수신료산정위원회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민수 교수는 “지난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KBS와 E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고 했던 정부 움직임을 고려하면 이 같은 방안이 제시될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이런 방식은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방송사를 ‘통제 영역 속에 놓겠다’는 의도로 방송의 자유를 구체화 한 방송법과 헌법 21조에 상충된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고민수 교수는 또 절차적으로 “수신료산정위원회를 거친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 승인 과정에서 수정·변경돼선 안 된다”며 “평가 기관의 결정은 후속 절차에서도 기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수 교수는 KBS 이사회 배제 이유에 대해서는 수신료를 현재 KBS와 EBS가 분배해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KBS가 일방적으로 수신료 인상폭을 결정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로 인해 수신료가 곧 KBS 운영비용으로 인식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토론자로 참가한 KBS의 수신료 인상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대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2차 인상안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자동폐기 된 원인은 결국 국회의원의 정치적 실익을 위해 일정정도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실익을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신료 인상이라는 시민의 지갑을 여는 안을 선택하기 보다는 공영방송사에 독립된 재원을 확보해 줌으로써 거둘 수 있는 방송의 자유를 포기했다는 지적이다. 

김대식 연구원은 그러나 “발제 내용을 보면 국회 승인 절차에 대한 부분에서 진일보한 내용이 있지만 과연 독립된 수신료산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식 연구원은 대신 프랑스식의 물가연동제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고민수 교수는 이에 대해 “수신료를 물가와 연동할 경우 조세로 수신료 자체의 성격이 변경된다”며 “일종의 특수목적세라고 할 수도 있는 데 일반예산으로 책정될 경우 언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 한국언론학회가 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연 '공영방송 재정안정화 기대효과' 세미나에 KBS 방송 카메라가 세미나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한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1981년 설정한 수신료 2500원은 30년 간 고정돼 있는데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2014년 현재 가치로 자판기 커피값도 안되는 160원에 불과하다”며 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문화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종관 정책연구실장은 “한미FTA와 한중FTA, 특히 한중FTA의 경우 국내 프로그램에 중국 거대 자본이 개입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문화정체성을 보호하고 문화창달에 이바지해야한다는 방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수신료 안정화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방송사 드라마 프로그램 캐스팅에 중국 자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있다는 점, 한류 바람을 몰고 왔던 대장금 2탄에서 주인공이 중국으로 넘어가 황제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식의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다는 예를 들었다. 

한편 이 토론회는 KBS가 지원했다. KBS는 지난해 초 현재 2500원에서 4000원으로 1500원 인상한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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