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메시지가 왔다. “이진아가 오디션에 나오는 건 반칙이야. … 아니야. 이진아가 반칙이 아니라 이진아가 진작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회구조가 정말 이상한 거야.”
건반 치는
주지하다시피, 다른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주춤하는 사이
▲ SBS 출연중인 가수 이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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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와 댄스음악 그리고 ‘악마의 편집’이 포화 직전에 이른 시장 상황에 대해
그런 점에서 이진아라는 중고신인(?)은 일종의 희소식과도 같다. 이진아는 아이돌로 대동단결해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K팝에 다양화라는 중요한 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강고한 아이돌 공화국에서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과연 그녀는 대중적 지지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탑 텐에선 얼마큼 올라갈 수 있을까. 또는, 대중들의 외면 내지는 반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기 음악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K팝과
어쨌든 인디라고 눙쳐지는 세계에도 이지리스닝 팝뿐만 아니라 듣는 귀를 낯설게 하는 음악이 존재해왔다는 건 정말 귀중한 발견이다. 유희열의 말마따나, 들을 음악이 없는 게 아니라 들을 음악을 찾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다만 그녀의 1집 앨범에선 다른 세션과 뒤섞인 통에 자기만의 독특함이 퇴색한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 일요일 날 메시지의 내용은 이진아에 대한 놀라움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표현했던 셈이었다. 오늘날 우리들 대다수는 목청 좋은 가수가 TV에 나와 일상생활을 깨워주길 바라며 멍하니 앉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멜론 차트 100곡을 무작위로 재생시켜 놓든가.
마음을 울리면 합격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 대국민 투표 따위에 참여하면서 능동적인 문화시민인 척 하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서글픈 현실이다. 이진아의 발견과 그녀에 대한 열광은 새로운 대중음악을 갈구하는 이들이 그 어떤 문화적 여유도 없는 채로 지난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이진아가 오디션에 나오는 건 명백한 반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