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는데요 안타깝게도 ‘호응’이 아닌 ‘분노’의 반응이었습니다. 무슨 이벤트인데, 이런 반응을 받았을까요?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가 강제병합 전 조선의 경제를 묶어두기 위해 차관을 제공한 것을, 당시 백성들이 힘을 모아 갚아내 주권을 찾아내자는 운동이었습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처음으로 시작됐고 이후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됐습니다.

의미 있는 기념일이니, 국가보훈처가 국채보상운동 관련 이벤트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방식이 이상합니다. 국가보훈처는 “2015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자”며 “우리는 어떠한 것을 (국가에) 기부할 수 있을지 댓글을 달아 달라”는 이벤트를 했습니다.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커플링을 기부할게요’ 이런 예시도 들었지요.

국가보훈처가 의도한 것은 실제로 기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부를 하겠다는 댓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벤트 시작과 함께 국가보훈처 페이스북은 속된 말로 ‘가루가 되도록’ 비판을 받았습니다.

페이스북 댓글에는 “이 정권을 팔아 기부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에게 받은 돈을 찾아내 기부하겠다”, “전 정권의 비리를 발견해 기부하겠다”, “공직자들의 비리를 찾아 기부하겠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국가보훈처는 이벤트를 중지하고 해당 게시물을 페이스북에서 삭제했습니다.

   
▲ 국가보훈처 페이스북 이벤트
 

무엇이 사람들을 분노케 했을까요? 일단은 이벤트 내용을 명확히 명시하지 않아 오해를 산 모양입니다. “어디서 또 사기질이냐?”, “농담인줄 알았는데 진짜네”, “X 뜯을 생각 말고 세금이나 제대로 걷어라” 등의 반응을 보면, 실제 국채보상운동 같은 캠페인이 전개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톡톡 튀는 여러분만의 기부내용을 댓글로 달아 2015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주세요”라고 했으니, 오해를 살 만 합니다.

두 번째, 국가보훈처가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담뱃값 인상, 서민증세 시도,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 연말정산 논란 등 “나라가 도둑질 해간다”며 분개한 국민들에게 ‘국채보상운동’ 운운하며 댓글로 애국심을 보이라 요구하고 있으니, 화가 날 법 합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 혈세낭비가 도마에 오르고 있는 판국에, 국민들에게 더 내놓으라니.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4자방 비리, 전국적 토건만행, 재벌대기업 퍼주기와 감세로 국가부채를 엄청 늘려놓고 그걸 먹고살기도 힘든 국민들보고 갚아달라고? 정권 내놓고 한국 떠나면 갚아줄게”라는 비판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국채보상운동’은 우리에게 숭고한 추억만이 남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1997년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은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참혹합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비정규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노동은 갈라졌습니다.

일본의 강제차관이었던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과는 달리, 1997년의 IMF는 고위공직자와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빚어낸 참사였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의 국채가 10년 전에 비해 다시 크게 늘어나 507조에 이른다고 하지만, 사실 국민들의 시선에서 이는 혈세낭비와 비리라는 1997년의 국채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IMF때 금모으기 운동을 할 때 기부했던 분들이 어떻게 살고 계신지, 그 이전에 평화의 댐 건설에 돈을 낸 분들이 어떻게 살고 계신지. 국난이 닥쳤을 때 희생한 분들께 돌려드리지 않고, 국난만 생기면 국민에게 기대는게 국가인가”, “사람들이 금모으기 운동 이후에 나라한테 뒤통수 맞았다고 내지는 내가 안 해도 되는 걸 괜히 했다고 생각하고들 있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 국가보훈처의 수장은 박승춘 처장입니다. 그는 지난 2013년 광주민주화항쟁을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데 반대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 기념일 전날에는 폭탄주를 돌려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선 전 강연에서 대선개입으로 오해할 수 있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사퇴압력을 받았지만, 그는 아직 국가보훈처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벌써 3년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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