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결과를 과장해 언론에 흘리는, ‘공작’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치적 파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야당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향신문은 25일 보도를 통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것이 국가정보원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대선개입에 이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난 공작을 벌였다는 점이 드러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경향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몇몇 언론은 권양숙 여사가 선물로 받은 1억원 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진술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언론의 보도가 이어진 지 열흘 만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인규 전 수사부장은 경향신문에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 여사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국가정보원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검찰 수사 책임자의 고백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검찰수사결과가 허위로 언론에 제공되어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면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또한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국정원이 퇴임한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 이러한 공작을 벌였다는데 섬뜩한 충격을 느낀다. 국정원의 누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 어떠한 식으로 언론에 이런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제공했는지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며 “당시는 사이버 여론을 조작해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임하던 시절”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관련 상임위를 긴급소집하겠다”고 밝혔다. 우 대표는 “이 전 중수부장의 폭로대로라면 국정원의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천인공노할 국정원의 만행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종민 정의당 대변인 역시 “당시 국정원의 수장은 원세훈 전 원장이었다. 원 전 원장은 이미 대선 개입으로 공직선거법상 유죄를 인정받았다.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여론을 뒤흔들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또한 “정권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거대한 기획을 단순히 원 전 원장이 독단으로 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정원조차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배후의 의지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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