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일 오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통령은 전혀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라기엔 민망했다. 김 실장이 20초 동안 단 3줄짜리 기자회견문을 읽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퇴장해버렸기 때문이다.

같은해 4월 인터넷 커뮤니티 ‘SLR’에 “뉴스보다 소름 돋는 장면”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대통령은 무언가를 읽고 있고 장관들은 받아 적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 한 명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글을 올린 누리꾼은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고 덧붙였다.

위의 두 장면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배한 2년의 청와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기춘 실장은 많은 이들에게 박근혜식 ‘불통의 리더십’의 당사자이자 인사문제 등 박근혜 정부의 문제점의 배후로 인식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8월 8일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주던 모습. 사진=청와대
 

김기춘 체제가 박근혜식 불통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그의 취임 때부터 제기됐다. 그의 이력 때문이다. 2013년 8월 임명된 김 실장은 불법대선개입사건이었던 초원복국집 사건의 주역이자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의 주요 검사였다. 유신헌법 제정에도 참여하고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 출신으로 장학회 모임 ‘삼청회’ 회장을 역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 멤버이기도 하다. 

김기춘 실장은 취임 이후 불통으로 일관했다. 언론의 의혹제기에 ‘소송’으로 답한 것이 대표 사례다. 김 실장과 청와대 비서실은 박지만 EG회장과의 갈등설을 보도한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을 상대로 고소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진도체육관 및 합동분향소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언론보도용 연출을 했다는 보도를 한 한겨레와 CBS도 소송 대상이 됐다. 정윤회 문건과 본인이 관련돼 있다는 동아일보 보도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인사가 문제될 때마다 김기춘 실장 책임론이 함께 제기됐다.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발언 등으로 낙마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두고는 김 실장이 추천했다는 설까지 돌았다. 

김 실장이 박 대통령 주변의 목소리까지 차단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두고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으나 김 실장이 거절했고, 이것이 진 전 장관의 사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장관마저 비서실장의 허락을 받아야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단독보도했던 국민일보는 이 보도를 뒤집었고, 국민일보 노조는 “사실에 진 게 아니라 청와대와 김기춘의 압력에 졌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많은 공직자들이 물러나는 동안 김 실장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정홍원 총리가 물러났을 때도. 지난해 6월 청와대 수석 5명이 교체될 때도,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총리 후보자로 내정하는 인적쇄신안이 나왔을 때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패러디물. ⓒ미디어오늘
 

김기춘 체제의 청와대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이다. 사건은 정윤회+문고리3인방 vs 박지만+조응천의 대결 구도로 진행됐으나 김 실장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정윤회 의혹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는 12월 6일 김 실장이 청와대 문건을 허락 또는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동아일보는 12월 8일 정윤회 문건이 김 실장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했다.

급기야 김 실장의 지시를 받아야 할 민정수석이 지시를 거부하는 항명 파동까지 일었다. 비선실세 의혹 관련 국회 운영위원회에 불출석했던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출석하라는 김 실장 지시를 무시하고 사표까지 제출한 황당한 사건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보수언론까지 김 실장에게 등을 돌리고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조중동은 세월호 참사 이후 김기춘 책임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어디 있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모른다”고 답변했다. 

김 실장의 답변으로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온갖 소문이 시작됐다. 조선일보는 10월 29일 사설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신의 ’모른다‘는 답변 한마디가 어떤 파장을 낳을지 가늠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심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언론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도 김기춘 실장 교체를 요구했으나 박 대통령의 신뢰는 굳건해보였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을 일컬어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며 김 실장을 오히려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 김기춘 비서실장. ⓒ연합뉴스
 

버티던 박 대통령은 결국 김 실장을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처했다.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국정운영동력은 떨어져 가고 있으며. ‘이완구 총리’ 카드도 상처투성이로 끝났기 때문이다. 비서실장 교체 외에는 반전카드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의 ‘불통’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용인한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라 본다면, 비서실장 교체가 반전카드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2인자를 믿지 않으며 본인이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존 스타일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일 평론가는 “김 실장이 좋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려 했을지 몰라도 결국 문고리3인방을 김 실장이 제압하지 못한, 암묵적인 평형만 유지한 모양새로 물러나게 됐다”며 “비서실장 인선으로 청와대 기류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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