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권성민은 샤를리 엡도가 아니다
권성민은 샤를리 엡도가 아니다
[미디어현장] 권성민 전 MBC 예능 PD, "페북에 끄적거린 만평, 비교하기도 민망한 서글픈 촌극"

회사에서 잘렸다. 좀 더 공식적인 단어로는 해고, 거기에 품위를 살짝 얹어주자면 해직 언론인이 되겠다.

사실 내 경우에는, 공정언론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장렬하게 칼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의 해직 언론인이라는 이름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입봉도 못해본 입사 4년차 조연출 예능 PD. 게다가 해고 사유도 만화를 그렸기 때문이란다. 그것도 내 페이스북에.

말마따나, 만화를 통해 회사의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이라도 했으면 민망하지라도 않겠다. 만화는 별 게 없었다.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하루아침에 일도 없는 영업부서로 발령을 냈기에 유배 중이라고 표현했고,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예능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며 프로그램을 만드는지를 그렸을 뿐이다.

해고 결정에 뒤따라 언론계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경영진은 반복해서 공식 입장을 내며 자신들의 결정을 변호했다. 4년차 일개 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언론사의 공식입장이라기엔 너무나도 격양된 감정은, 지금 MBC 경영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 권성민 MBC 예능 PD (사진=김도연 기자)
 

사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실리적인 대응은 ‘무시’였을 것이다. 회사의 결정적인 기밀을 유출한 것도 아니고, 방송을 통해 장난을 친 것도 아닌 바에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낱 조연출의 이야기가 알려져 봐야 얼마나 알려졌겠는가.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내부 경고 정도로 그쳤다면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어코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나보다. 덕분에 별 내용 없는 글과 그림은 온갖 매체를 통해 확산되었고, 한낱 조연출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가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자신들이 문제라고 표현한 내용을 스스로가 가장 열심히 홍보해 준 꼴이다. 이것이 현재 경영진의 정서다.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혹자는 근래에 이슈가 된 ‘샤를리 엡도’ 사건과 이 일을 함께 두고 언급하기도 했다. 만화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눈에 띈 모양이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실 ‘나는 샤를리 엡도는 아니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이들이 당한 폭력적 테러는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테러와는 별개로 그들의 풍자 자체만을 두고 보았을 때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금과옥조는 아니다. 풍자는 공공에 대한 책임을 지닌 개인 혹은 집단이, 그 수행에 있어 비판 받을 여지가 있으나 그러한 비판이 수용되기 어려울 때 가장 제대로 기능한다.

   
▲ 권성민 PD가 그린 ‘예능국 이야기’ ⓒ 권성민
 

물론 어떤 훌륭한 존재도 비판의 여지가 전무할 수는 없기에 풍자는 성역이 사라진다. 그러나 공공에 대한 책임과 상관없는 대상을 모욕하거나, 불특정 다수의 신념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이 역시 폭력이 될 수 있다. ‘샤를리 엡도’는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신념 자체를 풍자의 소재로 삼았기에 다분히 위험한 지점을 가진다.

사실 내가 ‘샤를리 엡도’가 아닌 데에는 이렇게 긴 부연도 필요 없다. 내가 그린 만화는 풍자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예능국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에 가깝다. 회사가 문제 삼은 ‘유배’ 표현은 사실상 지극히 객관적인 비유인데다, 그마저도 만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이 해고의 사유가 되고, 마치 수위 높은 풍자를 담은 만평이라도 되는 것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저 신변잡기에 불과한 어설픈 만화가,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샤를리 엡도’와 테러 사태에까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오늘날 한국의 언론 상황이이야말로 어떤 만화보다 더 현실감 떨어지는 한 편의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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