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된 만화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하나의 미디어로서 우리의 삶에 많은 영감을 준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만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만화가 있다. <원피스>다.

전 세계 공전의 히트작 <원피스>는 고무인간 몽키 D 루피의 대모험을 그린 액션물로, 작가 오다 에이치로가 1997년부터 집필에 나서 한국에선 지난 1월 76권이 발매됐다. <원피스>는 2013년 단행본 발행부수 3억 부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드래곤볼>(약 1억 5천만 부)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원피스>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영향력있는 미디어가 된 배경은 무엇일까. 

<원피스>는 <드래곤볼>처럼 주인공이 성장하며 점점 강한 적을 무찌른다는 소년액션물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처럼 근대를 초월하는 상상력과 다층적인 사회갈등을 반영하며 자유와 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주인공 밀짚모자 루피는 해적이다. 해적은 재물에 집착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란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해적을 ‘목숨 걸고 꿈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루피가 해적왕이 되어 꼭 찾고 싶어 하는 대비보 ‘원피스’(one piece) 또한 단순한 보물 혹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다.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성취나 이상향 그 자체다. 오다 에이치로는 루피를 통해 ‘대해적시대’란 이름의 ‘신질서’를 만든다. `흰수염' 에드워드 뉴게이트, `붉은 머리' 샹크스 등 대해적은 공권력을 상징하는 해군과 세계정부의 ‘구질서’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이끄는 주체다. 루피에게 보물 같은 밀짚모자는 앞선 위대한 선배들로부터 ‘계승되는 의지’를 이어가기 위한 길잡이다. 

   
▲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몽키 D 루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사회는 사회계약론에 기초한다. 과거 우리에겐 법과 제도가 없는 `야만의 시대'가 존재했고, 어느 순간 다수의 인간들은 공통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계약을 통해 사회를 만들었다. 홉스의 표현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불안전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자연권을 특정 정치세력에게 양도해 국가를 세웠다. 만약 정치권력이 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탄압한다면 계약 위반이다. 하지만 권력은 탄압의 역사를 숨기고 폭력으로 민중의 입을 막아왔다. 

이 상황에서 민중은 사회계약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연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해적 밀짚모자 루피는 자유로운 항해와 즐거운 모험을 방해하는 권력을 무시한다. 부당한 권력에는 고무고무열매 능력으로 통쾌하게 맞선다. 루피 해적단은 민중을 대변한다. 세계정부의 중심에 있는 귀족 ‘천룡인’이 또 다른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상품으로 사고파는 현장에서, 루피는 천룡인에게 주먹을 날리며 세계정부의 부당한 권위에 도전한다. 

<원피스>의 주 무대가 ‘위대한 항로’라는 바다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항해시대>(주경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 따르면 과거에 바다는 텅 빈 공간 혹은 누구의 것도 아닌 만인의 공로(公路)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대서양‧인도양‧태평양을 항해하게 된 대항해시대 이후 바다는 무력 지배의 대상 그리고 권력관계가 조직된 공간이 됐다. 자본은 축적되고,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폭력은 증가했다. 이렇듯 <원피스>의 세계관은 실제 세계사 가운데 대항해시대와도 닮아있다.

   
▲ 만화 '원피스'의 한 장면. 손목의 'X'표시는 동료애를 상징한다.
 

하지만 <원피스>는 소년액션물이기 때문에 계급 간 갈등이 주된 서사는 아니다. 이 만화의 중심은 ‘모험’이다. 우리는 모험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꿈 대신 세상에 순응해 직장을 구하고 평범하게 살기에도 힘이 든다. <원피스>의 루피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간다. 루피는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정작 지배에는 관심이 없다. 루피는 언젠가 말했다. “지배 같은 건 안 해, 이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녀석이 해적왕이다!” 만화는 우리에게 두근거리는 ‘자유’를 꿈꾸게 한다. 

루피는 모험의 현장마다 부당한 권력을 무찌르고 압제에서 해방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축제를 벌인다. 물질적인 무언가를 획득하거나, 소유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모험 그 순간만으로 즐겁다. 고전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말했다. “나는 확신하건대 사유재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올바르고 정당한 재화의 분배도 불가능하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통치도 불가능하다. 사유재산이 남아있는 한 사람들은 무거운 근심걱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루피가 찾는 ‘원피스’는 소유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유토피아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