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전세대란이 기승을 부린다. 한겨울 비수기인데도 전세가격이 10년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탄다. 이사철을 앞두고 학군수요가 늘어나는데 재건축 이사수요마저 크게 겹쳤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2%대의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자 집주인들이 앞 다퉈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바람에 전세값이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한다. 세입자들이 너무 오른 전세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아파트는 아예 포기하고 연립주택을 찾아 헤맨다. 

그것도 어려우면 서울을 떠나 수도권으로 더 싼 셋집을 찾아 나선다. 서울 세입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그곳의 집세도 밀어 올려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젊은 부부들이 기거처를 원룸으로 옮기니 대학가의 하숙생들도 오갈 곳을 잃는다. 그들이 더 싼 하숙집, 자취방, 고시원을 찾아 헤매지만 싼 방이 거의 없다. 국민의 40% 가량인 세입자들이 전세난민이 되어 서울의 변두리로 유랑한다. 하지만 전세대란의 불을 지른 박근혜 정권은 무대책으로 일관하며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지역 아파트 입주물량이 2만418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3만6860가구보다 44.6% 감소한 것이다. 이 물량은 최근 5년간 가장 적었던 2012년 1만9088가구와 비슷한 규모이다. 반면에 올해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이사수요는 많게는 5만8000가구에 달할 전망이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2만1000가구가 올해 이사를 개시한다. 사업이 유동적이지만 재개발 사업물량이 3만6600가구에 달한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택임대차 계약 중에서 월세비중이 지난해 10월 40%를 넘어 40.3%를 나타냈다. 은행예금이자가 2%대이니 전세값을 2억~3억원 받아도 이자수입이 월 40만~60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임대인은 월세를, 임차인은 전세를 선호한다. 월세와 전세의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는데다 공급물량마저 달려 작년 하반기 이후 전세값이 폭등세를 나타낸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통계청의 ‘2014년 국내 인구이동 통계’를 보면 서울을 떠난 첫째 이유가 주택문제이다. 지난해 서울을 등진 사람은 166만1000명인데 그 중 절반가량인 82만7000명이 주택문제로 떠났다. 서울로 들어온 사람은 157만3000명인데 그 중 77만6000명이 주택문제로 옮겼다. 서울을 떠난 사람에서 서울로 들어온 사람을 뺀 순유출 인구만도 5만1000명에 달한다. 유출인구의 상당수는 치솟는 전-월세값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을 탈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들이 잠자리는 서울을 벗어났지만 일자리를 찾아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박근혜 정권이 경제를 살린다면서 난데없이 모든 규제는 ‘암 덩어리’요, ‘원수’라면서 규제완화를 열창했지만 경제가 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박 정권이 다급했는지 주택경기를 살린다고 나섰다. 주택경기 부양에는 조건이 있다. 실수요자도 소득이 늘고 투자이득이 전제되어야 내 집 마련에 나선다. 가수요는 투자이득이 보장되어야 일어난다. 여기에다 집값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세력이 우세해야 관망세가 매수세로 돌아선다.

주택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정책만으로는 부양효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대출규제완화, 금리인하를 통해 은행돈을 더 싸게 더 많이 빌려줄 테니 집을 사라고 독려한다. 아파트 재건축을 밀어붙이니 전세수요가 일어나고 저금리 기조를 타고 월세 바람이 드세진다. 이명박 정권의 주택정책 실패로 전세파동의 잔열이 뜨거운 상황에서 주택경기를 살린다고 돈을 푸니 전세대란에 기름을 퍼부은 꼴이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출범하자마자 최소한의 수급예측도 없이 주택경기를 살린다며 주택관련규제를 마구 허물었다. 재개발 지역은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옥탑방, 지하방, 단칸방이 밀집해 있어 세입자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무계획-무분별한 뉴타운 정책에다 재개발, 재건축을 마구잡이로 강행함으로써 세입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2009년 서울에서 추진되던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모두 247개 지역, 23만가구가 넘었다. 

사상 최대의 전세대란이 필연적인데도 주택정책은 거꾸로 갔다.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공급정책을 펴는 바람에 소형 부족사태를 낳았다. 재건축 아파트 임대주택 건설의무를 없애버렸다. 임대주택단지를 철거하고 분양 위주의 보금자리주택으로 바꾸었다. 전세파동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시점에 소형 아파트 공급을 줄이고 임대주택 공급도 없애버리니 전세대란이 극성을 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단위가 4인가구 중심에서 3인-2인-1인가구로 변화하는 상황을 전혀 판단하지 못한 탓이다.  

주택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가격안정을 통한 주거생활안정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 정권은 노골적으로 집값을 올리겠다고 난리다. 부동산 투기이득은 빈자의 소득을 부자에게 이전시켜 경제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정권의 부도덕성을 말한다. 무주택자의 상당수가 상환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은행대출을 통해 주택경기를 살리더라도 거품이 꺼질 때 생기는 후유증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이후 역대정권의 경기부양을 노린 부동산정책이 실패함으로써 심각한 후유증-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IMF 사태라는 경제파탄 속에 태어난 김대중 정권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고용창출이었다.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고용을 확대하려고 모든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철폐했다.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주택청약저축 배수제-재당첨 제한폐지 등등 투기억제를 위한 족쇄를 모두 풀어버렸다. 전세파동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소형아파트 건설의무화를 폐지해 소형공급이 끊겼는데 여기에다 아파트 재건축 요건도 완화했다. 전세대란이 투기광풍을 타고 기승을 부렸던 것이다. 이 값비싼 교훈을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이 저버려 국력을 낭비하고 많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주택전세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도시의 세입자들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언론도 그 실상을 자세히 전달하지 않아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느낌이다. 비수기인 한 겨울철에 전세가격이 폭등세를 보여 전세난민들이 더 싼 셋집을 찾아 변두리로, 변두리로 헤맨다. 아니면 또 빚을 내서라도 집세를 더 올려주어야 하니 빚더미가 쌓인다. 집을 옮기면 아이들 학교도 옮겨야 하니 집을 줄여서라도 주변에서 더 싼 셋집을 찾으려고 애쓰나 허탕이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 집세 내고나면 남는 게 없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구매력 부족에 따른 내수부진 탓이 크다. 전세대란이 경제를 죽이나 박근혜 정권은 엉뚱한 타령이나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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