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법원으로 옮겨갔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공무상 비밀누성 등으로 기소된 한모 경위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피의자들은 세계일보 기자, 박지만 EG 회장, 청와대 행정관 등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로 정리했지만, 법원에서 변수로 작용할 몇 가지 요인이 남아 있다. 첫 번째 변수는 지난 6일 내려진 NLL 대화록(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다.

   
▲ 2013년 6월 국정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표기. 사진=노컷뉴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6일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2013년 말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이 대화록 초본을 폐기하고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은 것이 위법행위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완성본이 작성된 상황에서 초본은 더 이상 보존가치가 없으며 폐기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대화록 초본이 대통령기록물이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초 실종 사건’은 허망하게 끝났지만, 이 판결은 정윤회 문건 판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지난 6일 열린 청와대 문건유출 관련 공판심리기일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 측 변호인은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사건 판결문을 증거로 요청했다. 변호인은 “그 안에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해석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대화록 폐기를 두고 법원은 대통령기록물 설립 요건에 대해 정리했다. 재판부는 ‘기록물의 생산 또는 접수가 완료된 것, 즉 결재권자의 결재가 있을 것’을 요건으로 제시했다. 대화록 초안은 노 전 대통령의 결재가 없어서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다. 정윤회 문건 등 17개의 문건은 결재권자와 결재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문건의 생산주체가 누구이고 결재를 거친 것인지 등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대립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폐기한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오른쪽)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떠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스
 

재판부는 또한 대통령기록물의 요건으로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 경정 측은 일부 문건을 유출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 직무수행과 관련된 문건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법원이 변호인 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 검찰은 또 한 번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

두 번째 변수는 박지만 EG 회장의 증언이다. 검찰에 따르면 청와대 문건의 유출 경로는 ‘조응천->박관천->전모씨(박 회장 측근) -> 박 회장’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의 위법행위는 전모씨에게 넘어가는 순간 입증될 수 있다.

실제로 검찰이 아닌 조 전 비서관 측 변호인이 박지만 EG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은 17건의 청와대 문건 중 일부를 박 회장에게 전달한 것은 맞지만 대통령친인척 관리라는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으며, 논란이 된 정윤회 문건 등은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건을 전달받은 박 회장이 이 같은 주장에 부합하는 진술을 할지 안 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박 회장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권력암투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박지만 EG 회장. ⓒ연합뉴스
 

검찰이 문서유출로 사건을 종결지으면서 묻혔던 쟁점들이 다시 드러날 수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한모경위와 사망한 최모 경위에 대해 회유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피의자인 한모 경위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추가적으로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이러한 의혹이 규명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6일 공판심리기일에서 기자들이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증인채택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나”라고 물었으나 조 전 비서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음번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7일 오전 11시로 예정돼 있다. 재판부는 이 날 검찰이 요구한 재판의 비공개 여부에 대해 결정할 계획이다. 피의자 변호인들은 공개 재판을 요구하고 있다. 재판부는 3월 13일 공판을 시작해 매주 금요일마다 공판을 열어 사건을 심리할 예정이다. 치열한 공판이 예상되는 만큼 1주일에 2-3회 공판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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