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행정부처 출입 기자에게 프레스카드를 나눠줬다. 카드를 가진 기자만 취재를 허용했다. “취재지시권이 신문사에 있는 게 아니라 취재대상인 행정부가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언론자유는 보장될 수 없었다.” 언론인 송건호의 지적이다. 

일본제국주의 산물인 출입처·기자단제도는 한국과 일본 언론에 깊게 뿌리내렸다. 출입처 제도는 1987년 언론민주화 이후 반복되는 언론계의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다. “한국에선 인연과 안면이 취재에 굉장히 중요하다. 인적 네트워크를 쌓지 않으면 취재가 어려워 출입처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A종합일간지 사회부장의 말이다. 무분별하게 정부부처를 개방하면 검찰 같은 수사기관의 정보가 취재 외의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유통될 수 있다며 엄격한 출입처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출입처는 근본적으로 취재원과 취재기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취재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기자들은 출입처의 보도 자료에 의존해 쉽게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출입처가 제공하는 정보와 논리에 순응하며 ‘출입처 편의주의’에 매몰되면 ‘발표저널리즘’이 등장하게 된다. 출입처에 안주하며 취재원과 결탁하는 관행으로 똑같은 기사가 수십 개씩 쏟아진다. 출입처가 만든 프레임을 베낀 결과다.  

   
▲ 2008년 5월 8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출입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청와대
 

출입처제도에서 파생된 독특한 제도가 ‘기자단’이다. B종합일간지 중견기자는 “기자단이 있으면 기자들은 편하다. 기자들이 없애려고 해도 공공기관이 없애지 않을 거다. 홍보실에서 아침에 구내식당 데려가 밥 먹이고, 점심에도 밥 먹이고, 밤까지 남아있으면 저녁도 챙겨준다. 그런 식으로 기자들을 길들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연말엔 기자와 출입처 사이에 □□가 부지기수다>

C경제일간지 기자는 “기자단은 좋게 보면 신뢰의 관계, 나쁘게 보면 배제의 장치다. 기자단에 없으면 정보접근 자체가 어려운데, 누구는 기자단에 받아주고 누구는 안 받아준다. 사실 이게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기자단은 출입처와 끊임없는 협상과 타협을 반복하며 기사의 수위를 조율한다. 정부부처는 기자단 가입 여부를 이유로 취재에 응하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엠바고, 풀(pool)제, 보도자료, 오프더레코드, 기자단…. 모두 ‘출입처’를 통해 파생된 제도다. 출입처를 장악한 기자단은 제도언론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여기에 권력의 이해까지 맞아떨어지며 비제도 언론의 정보접근성을 차단했다. 참여정부 이후 기자단 제도가 많이 느슨해졌으나 여전히 국회, 경찰서, 검찰 등에선 엄격하게 운영되고 있다. 

출입처와 기자단의 한계는 여러 사례로 드러나고 있다. 2011년 제미니호 선원들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자 외교통상부는 출입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했다. 기자단은 외교부 요구에 따라 피랍 500일까지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미디어오늘과 시사인이 엠바고를 파기하며 보도한지 100일 만에 선원들은 전원 석방되어 고국에 돌아왔다. 외교부 기자단 소속으로 엠바고를 파기했다면 장기간 출입이 정지 당하는 불이익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관련기사=제미니호 선원 4명, 피랍 582일 만에 석방> 

2014년, TV조선은 서울시경기자단 가입이 계속 퇴짜를 맞자 “기자단은 뚜렷한 이유 없이 다섯 번씩이나 기자단 가입을 거부했다. 정정당당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할 언론계 풍토에서 높은 장벽을 쳐놓고, 아무런 이유 없이 타 언론사의 진입을 가로막는 이런 행태야말로 한국 언론에서 가장 비판받아야할 어두운 구석”이라며 시경기자단을 공개 비판했다. 

기자단 가입조건은 기자단이 정한다. 기자단이 곧 권력이다. TV조선은 “권력과 자본에 의한 언론 통제 시도에 언론은 끊임없이 맞서야 하지만, 언론이 언론을 통제하려는 움직임 또한 혁파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껏 기자단 가입을 엄격하게 제한하자고 주도한 언론사가 TV조선과 특수 관계인 조선일보다. 기자단제도의 모순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 2014년 2월 6일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지난해 5월 민경욱 대변인의 오프 발언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경향신문에 63일간의 출입정지 징계를 통보했다. 청와대를 감시·비판해야 하는 기자들이 정부 입장을 대변하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대변인 발언을 보도한 동료 기자들을 징계한 초유의 사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같은 기사가 수십 개 쏟아지는 배경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군사정권은 끝났지만, 언론통제는 기자들의 ‘자발적 복종’속에 이어지고 있다. <관련기사=기자들이 나서서 ‘보도통제’, 출입기자단 이대로 괜찮은가>

조선일보는 1993년부터 기자실명제를 채택했다. 혁명적 변화였다. 2001년 중앙일보는 ‘난곡 시리즈’로 서울의 빈민촌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들여다봤다. 탐사취재기법이 한국 언론에 접목 된 첫 사례였다. 시대가 이러한 변화를 언론에 요구했다. 그럼에도 출입처는 여전히 강력한 취재관행이자 구조로 남아있다. 

언론이 달라지지 않자, 정부가 나서서 변화를 주도한 적이 있다. 참여정부는 2003년 6월 기자실 춘추관을 모든 언론에 개방했다. 기자실이 개방되며 기자단 제도는 폐지됐다. 브리핑 제도로 국정 정보를 공개했다. 청와대는 2007년 5월 37개 중앙부처 브리핑룸을 3곳으로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제한하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기자협회가 2004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제 시행에 대해 응답한 기자의 47.3%는 ‘잘했다’, 24.6%는 ‘잘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시도는 기자의 독자적인 취재를 제한한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언론사 간 차별, 취재원과의 유착, 촌지 수수 및 향응과 같은 기자실의 각종 폐단을 크게 개선시켰다는 평가가 있지만, 참여정부의 도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출입처와 기자단은 기자 본인에게도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 기자)는 “출입처와 기자단은 기자의 경쟁력을 왜곡시킨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과정은 폐쇄적이고 연고에 기초하고 있어 새로운 도전이나 발상의 전환, 용기와 지혜의 동원 등이 원초적으로 차단된다”고 지적했다. 

EBS <지식채널e>를 성공시킨 김진혁 전 EBS PD는 “언론이 출입처에 매몰돼 단편적인 뉴스를 내보내거나 그들만의 리그로 천편일률적인 속보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지식채널e’의 성공 비결을 발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제규 시사인 기자는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는 주간지 기자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권투경기로 비유하면 일간지 기자는 사각 링 안의 심판처럼 두 선수의 상태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반면 주간지기자는 해설자 입장에서 관중과 코치를 보고, 경기의 판을 넓게 읽을 수 있다. 일간지 기자에 비해 주간지 기자는 팩트만 보고 쫓아갈 수 있다.” 

최근 한겨레 ‘자원외교’ 시리즈처럼 탐사보도팀 같은 ‘별동대’를 통해 만들어진 기사들이 출입처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일간지의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이제 기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열람하고 공유할 수 있다. 기자실에 앉아 취재원 근처만 서성거릴 이유가 없다. 

출입처 제도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부처가 기자들의 정보 공개 요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사 스스로 출입처제도와 기자단 관행에 문제의식을 갖고 틀을 깨는 시도가 필요하다. A종합일간지 사회부장은 “기자단의 경우 신생사나 군소매체에 불이익을 주는 성격이 강하다. 시경과 검찰을 제외하곤 사실상 기자단이 많이 깨지기도 했다”며 기자단제도의 수명이 다했다고 진단했다. ‘디지털퍼스트’를 외치기 전에 낡은 취재관행을 고민하고 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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