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TV조선 <대찬인생> 100회에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씨가 출연했다.

박근령씨의 TV출연이 이례적인 만큼 시청률도 5.62%(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방송가구 기준)로 높게 나왔다. 100분간의 방송에선 故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호평이 주를 이뤘다. 대신 박 대통령과 박근령씨의 오랜 갈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피부가 너무 곱다”는 칭찬으로 시작된 이날 방송에선 독재정권시절 ‘영애’ 박근혜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조명했으며,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애과정도 소개됐다. 박종진 진행자는 박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를 위해 지었다는 시를 스튜디오에서 직접 읊기도했다. 

제작진은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육사를 졸업했다고 소개하며 그를 ‘보통의 군인 남자’로 묘사했다. 박근령씨는 아버지의 삶을 “혁명”과 “국가재건”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제작진은 육 여사의 장례식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눈물을 보였다며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려 했다. 유신독재시절의 인권탄압과 반민주적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 TV조선 '대찬인생' 박근령 편의 한 장면.
 

박근령씨는 육 여사의 절약정신과 삼남매의 서민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박씨의 초등학교 은사로 등장한 안장강씨는 이날 방송에서 “당시에는 (박근령을) 공주라고 불렀다. 공주님을 만나게 됐는데, 대통령 자제라고 해서 특권의식 갖는 건 (박 전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주대접은 받았지만, 특권의식은 없었다는 말이다.

박근령씨는 “용돈이 늘 부족했다”고 말했다. 육영수 여사에 대해선 나병환자(한센인)를 돌보던 모습도 강조했다. 훗날 2000년대 육영재단 분규사태 당시 조폭과 나병환자들이 동원되며 삼남매가 갈등을 겪었던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언니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서는 “형님은 뛰어난 집중력으로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며 학업능력을 치켜세웠다. 박근령은 1979년 10.26사태 당시를 회상하며 “아버지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형님이 ‘휴전선은 이상 없습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 TV조선 '대찬인생' 박근령 편의 한 장면.
 
   
▲ TV조선 '대찬인생' 박근령 편의 한 장면.
 

1990년 8월 박근령씨는 동생 박지만씨와 함께 ‘최태민에게 빠진 언니를 구해 달라’는 내용으로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 형식의 탄원서를 썼다. A4용지 12장 분량의 탄원서에서 박근령씨는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 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윤회씨가 최태민 목사의 사위였다. 박근령씨는 그러나 최태민‧정윤회 등에 대해서도 방송에서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박씨는 남편 신동욱씨(공화당 총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방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려운 일을 맡으셨으니 형님(박근혜)이 뜻하시는 일들이 잘 이뤄지기를 부모님께서도 바라고 계실 거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지만씨는 박근령씨와 신동욱씨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씨는 이를 두고 “나이차가 많이나서 결혼에 반대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욱씨는 박근령씨의 ‘운명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소개됐다. 신씨는 자신이 중국 청도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며 박지만씨를 살인교사죄로 고소한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오히려 무고죄로 구속됐으며, 1년 6개월의 실형을 마치고 2013년 2월 출소했다. 2011년 양측의 소송이 한창이던 당시, 박지만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조짐을 보였던 박지만씨의 전 비서실장이자 5촌인 박용철은 살해됐다. 신씨를 둘러싼 이러한 이력과 사건 또한 방송에선 소개되지 않았다.

   
▲ TV조선 '대찬인생' 박근령 편의 한 장면.
 

TV조선 <대찬인생> ‘박근령 편’은 대통령의 친동생이 출연하며 청와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은 박근혜정부 3년차를 맞아 정부여당 지지층인 50대 이상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비춰진다. 실제로 이날 방송은 50대 이상 여성과 60대 이상 남성 등 중‧장년층 시청자로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향수와 비극적 삶을 보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켜 집권의 당위성 등을 주입하는 효과다. 

이렇듯 보수정권의 특혜 속에 탄생한 종합편성채널은 보수정권의 이해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 박근령씨는 이날 두꺼운 화장을 하고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찬인생>은 정교하게 꾸며진 대본 속에서 박씨의 삶을 응원했으나, 정작 방송에서 박씨의 삶은 온전히 비춰지지 않은 느낌이다. 

최근 출간된 책 <주기자의 사법활극>(주진우, 푸른숲)에 따르면 박근령씨는 주진우 기자와 조선호텔 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직접 싸왔다고 했다. 책에 따르면 박근령씨는 주 기자에게 “언제 어디서 독살 당할지도 몰라요. 누가 뭘 탈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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