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박수택 환경 전문 기자는 한반도 이래 최대, 그리고 최악의 국책사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최전선에서 비판한 언론인이다. 현재는 논설위원으로 현장을 떠나 있지만 그의 명함에는 여전히 ‘환경 전문 기자’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 있다. 

박 기자는 1984년 MBC에 입사하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1991년에 옮긴 SBS에서 2003년부터 환경 전문 기자의 길을 걸었다. 박 기자는 자신에 대해 “한 분야를 오래 취재할 수 있었던 복 받은 사례”라며 “전문기자는 젊은 시절의 꿈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1984년, MBC 입사 동기들끼리 종종 호프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우리는 빛나는 언론인이 되자, 끝까지 현장에 남자’란 말을 호기롭게 주고받았다. 그때 그 기억을 잊지 못했고 초심을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 산하 포린프레스센터(Foreign Press Center)가 마련한 4주 연수도 자극제가 됐다. 박 기자는 “당시 방송기자가 신문 기자보다 취재력이나 안목이 모자라 기사를 쓸 때 신문을 참고하거나 베끼는 일이 빈번했는데 난 그게 참 자존심 상했다. ‘이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연수에서 만난 일본 언론인들의 모습은 우리와 사뭇 달랐다”면서 “우리는 폭탄주 마시고 시국에 대한 푸념만 했지 연구하는 분위기가 없었는데 일본 언론인들에겐 일상적인 ‘벤쿄카이(공부모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박 기자가 환경 전문 기자가 된 건 2003년이다. 이후 굵직굵직한 보도가 나왔다. 2005년 <지하철 미세먼지에 ‘쇳가루’ 가득>에서 지하철 먼지의 70%가 쇳가루라고 보도했다. 그는 “지하철역을 지나다가 우연히 단서를 잡았다. 실제로 자석을 대보니 먼지가 쩍쩍 달라붙었다”라고 말했다. 

   
▲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청계천 복원 이후 어종이 증가했다는 서울시의 홍보가 과장이었다는 사실도 박 기자를 통해 드러났다. 서울시가 청계천에 물고기를 방류했다는 사실을 제보받은 박 기자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환경기자클럽에 이를 알려 공동취재했다. 일명 ‘청계천 어류 방류 의혹’ 사건은 2010년 5월 각 언론사에서 보도돼 사회적 논란이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일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이후 달라진 방송사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기도 했다. 

박 기자는 “SBS는 물론 방송 3사에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근데 희한하게도 한 달 뒤 MBC는 <시사매거진 2580>에서 KBS는 <취재파일K>에서, SBS는 <물은 생명이다>에서 다뤘다. 왜 그랬을까”라고 되물었다.  

서울시는 그해 8월에도 청계천에서 은어가 발견됐다고 또 한 번 허위성 보도자료를 냈다. 박 기자는 “서울시가 2002년, 2003년, 2005년에 한강에 은어 40만500마리를 방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난 이 보도자료와 연합뉴스 기사를 보는 순간 간파했다. 전문가로부터도 아무 의미 없는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고 한겨레 남종현 기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한겨레가 나의 제보를 받아 크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먼저 제보 받고도 뉴스로 내보내지 못한 셈이다. 박 기자는 “이런 보도 이후 서울시는 과장·허위 사실이 담긴 보도자료를 내지 못하거나 내지 않고 있다. 나는 그걸로 언론인으로서의 내 몫을 다했다고 본다”고 했다. 

“‘끝까지 현장에 남자’는 30년 전 다짐, 잊지 못한다” 

환경 전문 기자로서의 전문성은 4대강 사업에서 더욱 빛이 났다. 박 기자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된 지 얼마 안 됐던 2008년 3월27일,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담겨 있는 국토해양부 내부 문건을 단독 보도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를 위한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박 기자는 “여전히 제보자를 밝힐 수 없지만 신뢰할만한 제보자였고, 크로스체크하면서 대운하를 위한 비밀회합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4대강에 대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비판해온 박 기자는 이에 대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번 회고록은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판단할 수 있는 ‘시험서’라고 본다. 돈 주고 사지는 말고 빌려서 읽은 뒤 판단해보자”라고 말했다. 

   
▲ 지난 2010년 현장을 뛰었던 박수택 환경전문기자. 4대강 지류의 수질 개선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31년간 매진해온 기자생활에서 박 기자가 전문성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한 가지는 ‘성실함’이다. 박 기자는 “야근할 때 ‘야근이냐, 숙직이냐’며 후배들을 잠 안 재우고 밤에 깨우며 깐깐하게 굴어서 미안하기도 하다”고 슬쩍 웃었다.

박 기자는 “하지만 야근자와 아침 출근자들이 교대하는 시간 점심시간, 야근할 때 운 좋게도 제보 전화를 많이 받아 특종한 경험이 있다”면서 “기자는 눈 부릅뜨고 터지는 사건을 잘 챙겨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마음이 몸에 유전자처럼 박혀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는 소식은 MBC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당시 MBC보도국 국제부에서 근무했던 박 기자는 선배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일찍 들어와 텔레타이프실 문을 열어본 덕분(?)에 따끈따끈한 외신 두루마기를 발견했다. 1991년 다적국 군대가 이라크를 공격한 외신도 야근자와 아침출근자가 교대하는 어수선한 오전 8시 30분경에 박 기자가 민첩하게 알아냈다.     

“O 기자, 오늘 누구를 만났습니까?”

박 기자는 후배 언론인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박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출범하기 전 SBS기자협회장을 맡았고, 2000년 SBS본부장도 역임하는 등 SBS 방송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박 기자는 “편중 없이 고른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되려면 여론의 중개자인 기자들이 더 뛰어다녀야 한다”고 했다. 

“기자들에게 ‘오늘 누구를 만났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권력자와 술 한 잔을 나누었나, 권력자와 사이좋게 골프장 필드를 걸으며 ‘나이스샷’을 외치셨나. 현장에서 그늘에 있는 사람을 만나 맺힌 이야기들을 들어야 한다.”

박 기자는 2010년 돌연 논설위원으로 발령 났다. 타의에 의해 현장을 떠나게 됐다. 박 기자는 “취재 계획에 쫓기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몸이 편해졌다. 마음은? 글쎄…”라고 했다. 그는 “취재현장에서 흰 머리 휘날리며 정년퇴직하는 그 날까지 리포트하자는 1984년 수습기자 시절의 다짐을 이루는 것이 내 로망이었다. 정년퇴직까지 3년 남았다”며 에둘러 현재의 심경을 표현했다.  

박 기자는 “취재현장을 떠난 지 6년째인데 무뎌짐을 경계한다. 30년 언론생활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현장에서 물러나 ‘그땐 그랬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항상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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