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을 둘러싼 파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언론은 ‘13월의 세금폭탄’이라고 정부를 비판하고,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연말정산의 원인이 ‘서민증세’가 아니라 ‘세금정치의 실패’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연말정산 파동, 문제와 해법은?’ 토론회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은 ‘무능한 세금정치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근로소득세 증세 보다 법인세 감세를 철회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법인세 감세 철회를 주장하기 보다는 ‘세금 폭탄’론을 들고 나오고 언론이 조세저항을 부추기면서 쟁점이 희석됐다는 지적이다.

오 위원장은 “공제제도를 설계할 때는 계층별 평균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구별 자녀 수 유형 등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왜 이런 점들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몇몇 시민단체들이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이번 세재개편을 비난하는데도 기획재정부가 맞대응하지 않는다. 사후 대처에도 미진했다”고 비판했다.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기획재정위 조세소위 위원) 역시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면 한 달 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세 부담이 늘어나고, 또 줄어든다고 계속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 충격이 큰 것”이라고 정부를 질책했다.

   
▲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말정산 파동, 문제와 해법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박원석 정의당 의원(기재위 조세소위 위원)은 “정부가 제대로 설명을 못했다. 평균주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평균적인 세수효과를 두고 연소득 5500만원까지는 세금이 안 늘고, 7000만원부터는 2-3만원씩 늘고, 그 이상은 누진적으로 늘어난다고만 설명했다”며 “가구유형에 따른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뿐더러, 근로소득세율을 축소해 미혼에 싱글인 사람들이 과거 면세자였다가 과세자로 전환된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말정산 개편의 핵심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교육비, 의료비 등에 대한 특별소득공제가 특별세액공제로 전환되고, 6세 이하의 자녀나 출생입양자 등에 대한 자녀소득공제가 자녀세액공제로 전환된 것, 근로소득공제가 전반적으로 축소된 것도 특징이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대체적으로 연말정산 개편의 방향이 맞다고 진단했다. 박 의원은 “전체적으로 세재개편안의 근본방향과 취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재는 누진적인데 공제감면제도는 역진적으로,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이 감면받았다. 조세형평성 측면에서 제도 내 역진성을 바로잡고 상대적으로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덜 감면받게 한 취지”라고 평가했다.

나성린 의원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전환하면 형평성이 높아진다.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굉장히 늘어난다”며 “문제는 5000~7000천의 중산층에서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실수다. 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옳다”고 강조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장 적극적으로 이번 연말정산 개편을 옹호했다. 성 교수는 “연말정산 ‘파동’이라는데 근본적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우리나라 1인당 GDP가 2만5천불인데 소득이 5000만원 이상이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이 사람들은 중산층이 아니라 고소득 근로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말정산 개편을 바꿀 필요가 없으며 지금 그대로가 가장 좋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금폭탄’이라는 말을 써가며 정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오건호 위원장은 “한국에서 이렇게 폭탄이 자주 터지는 줄 몰랐다”며 “이런 식으로 세금이 ‘악’이 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장은 “부자들 세금을 물리력으로 꺼낼 거냐. 다수시민의 압박으로 꺼내야 한다”며 “‘세금폭탄’론은 압박을 만들어내야 할 다수 시민의 내적 동력이 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 새정치연합이 공조했다”고 비판했다.

   
▲ 납세자연맹의 퍼포먼스. ⓒ연합뉴스
 

박원석 의원은 “세금폭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 종부세 도입 때 세금폭탄론의 영향으로 종부세를 내지도 않은 사람들이 종부세에 반대했다”며 “연말정산으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조세폭탄론에 휘말려 편승할 수 있다. 그 어떤 증세도 불가능해지고, 조세저항도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세금폭탄론’의 후폭풍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백지화됐다고 주장했다. 직장 보수 외에 고액의 사업‧금융소득에 대해 건강보험료를 물리는 것이 개편의 골자였으나 무산됐다. 박 의원은 “45만명의 부담을 강화해 500만의 저소득층이 혜택을 보는 제도가 날아가버렸다”고 비판했다.

반면 기재위 조세소위 위원인 홍종학 새정치연합 의원은 ‘세금폭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반박했다. 홍 의원은 “지금 문제되는 내용은 연말정산 개편 논의 당시에 다 지적됐던 사안이다. 6세 이하 자녀공제 다음에 하자고 점진적으로 하자고 했는데도 (여당이) 밀어붙였다”며 “의료비와 교육비는 2013년 이전까지 경비성 지출이라고 소득공제였는데 2013년 와서 지원성 지출이라며 세액공제로 바꾼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또한 “그렇게 밀어붙이면서 재벌에게 매년 비과세감면 해주고, 법인세 실효세율도 얼마 안 되는데 내버려둔다. 지난 7년 간 부자들에게 세금 깍아준 게 얼마냐”며 “부족한 세수는 정부와 중산층에게 걷는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신념이다. 이걸 세금폭탄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 의원의 주장은 국민들이 연말정산 개편에 반발하는 이유가 조세형평성에 문제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홍 의원은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내달라고 요청할 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국민 혈세를 살뜰하게 써서 낭비가 없을 것이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는 법인세를 올리거나 부자감세를 철회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나 의원은 “부자감세라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소득세의 경우 이명박 정부 말부터 계속 부자증세를 해왔다”며 “법인세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다 같이 낮췄다. 대기업만 낮춘 게 아니다. 그리고 깎아준 이유도 부자와 대기업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기업경쟁력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청와대 업무보고를 이유로 불참했다. 그의 발제문에는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문 실장은 “투자, 고용위축 등 경기회복 저해가능성, 국가간 조세경쟁, 선진국들의 법인세율 운용상황을 고려할 때 법인세율 인상은 어렵다”며 “법인세율 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는 기업투자에 악영향을 미쳐 경기 회복세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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