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방지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에 언론인 포함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주요 종합 및 경제지 기자들이 이해관계자인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 수백만원대의 해외취재를 다녀온 것으로 밝혀졌다.

종합지와 경제지의 자동차업계 담당기자들이 대거 아우디 등 수입업체와 한국GM 등 완성차업체의 지원으로 미국 라스베이가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모터쇼 등을 다녀왔다.

국민일보, 경향신문, 세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 5개 종합일간신문사 자동차담당 기자들은 아우디코리아의 후원으로, 매일경제・한국경제・서울경제・헤럴드경제・아시아경제・파이낸셜뉴스・머니투데이・아주경제 등 경제지들의 자동차담당 기자들은 한국GM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디 코리아의 후원을 받은 언론사 기자들은 1월 7일부터 13일까지 6박 7일간 미국 라스베거스를 경유해 디트로이트를 다녀왔으며, 한국GM의 후원을 받은 기자들은 11일부터 14일까지 3박 4일간 디트로이트만을 다녀왔다.

   
아우디 코리아를 위주로 소개한 한국일보 기사 
 

이들 기업측은 항공료와 숙박비를 기자들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인천-디트로이트간 항공료와 숙박료 등을 더하면 기업체들의 해외취재 지원금액은 1인당 300여만 원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아우디코리아측과 한국GM측의 관계자들은 취재지원 대상과 상세내역의 공개를 꺼려하면서도 “언론에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신문사에 대한 지원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취재지원의 효과에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아우디코리아의 취재지원을 받은 일간지는 아우디의 자유주행차량에 대한 소개기사로 “아우디 자율주행 차량은 운전의 재미까지 고려”(경향신문), “GO-STOP, 운전자 없이도 척척 자동차”자율주행차 잭 만나보니”(서울신문), “900KM 무인주행 거뜬 두손의 자유 도로위의 여유”(세계일보) “귀신이 놀라겠네, 차가 알아서 요리조리”(한국일보) 등을 보도했다.

한국GM의 취재재원을 받은 경제지들도 “한국GM 노조 때문에 경쟁력 타격”(매일경제) “GM이 보는 한국차 경쟁력”(한국경제) “남성적 외관 역동적 주행성능 캐딜락 독일차에 뒤지지 않아”(아주경제) 1시간에 322Km 주파...스포츠세단 3세대 CTS-V(머니투데이), GM캐딜락 한국진출 박차(아시아경제) “GM럭셔리 브랜드 캐딜락 한국점유율 10년내 10%”(파이낸셜뉴스) 등 GM의 자동차 제품을 소개하거나 경영진의 입장을 전달하는 기사들을 보도했다.

취재지원을 받은 한 신문사의 기자는 “최근 들어 김영란법 논란으로 자동차업체의 취재지원을 받은 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모터쇼 참가는 일종의 관행으로 자동차기업들이 홍보마케팅 차원에서 후원하고 최신 트렌드의 기사를 많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다녀왔다”고 말했다.

   
GM의 신차들을 소개한 매일경제 기사 
 

이번 해외취재에는 불참했다는 또 다른 신문사의 기자는 “2000년대 초부터 기업체 후원을 받아 모터쇼에 가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만 지난해 파리모터쇼는 쌍용차 티볼리 때문에 다녀왔다”면서 “이번에는 배기량이 큰 미국차 위주의 모터쇼여서 국내시장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을 초과해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으며 직무 관련성이 없는 돈을 동일인으로부터 횟수와 상관없이 연간 300만원을 넘게 받는 경우, 언론인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상임대표는 “해외취재가 필요하다면, 원칙적으로 언론사의 자체경비로 갔다 와야지, 기업의 돈을 받는다는 것은 독자를 대신해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기자가 편의를 제공받는 일종의 부패구조를 형성하는 행위”라며 “언론이 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사회의 부패사슬을 상당수 해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언론인도 공직자와 다를 바 없이 김영란 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 정무위에서 의결됐으나 여야 지도부의 일부 인사들이 뒤늦게 ‘언론자유침해’ 등을 이유로 언론인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법안통과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도 언론자유침해를 이유로 언론인을 해당법률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자유를 한국기자협회 등 일부 언론계에서도 언론자유침해와 언론계 내부자정을 이유로 사실상의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언론노조 등에서는 언론의 공공성을 이유로 해당 법안의 적용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돼야 한다면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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