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권성민 PD를 해고했다는 소식에 한숨이 나온다. 권 PD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양심과 열정과 순수를 지닌 후배가 분명하다. 불의한 경영진을 비판하고, 모순된 현실을 고발해서 불이익을 받았으니 말이다. 권 PD는 ‘자유와 창의과 책임’으로 요약되는 MBC PD의 전통을 이어갈 자랑스런 후배다. 

권 PD의 고교시절 은사님이 ‘해고 철회’ 서명을 제안하며 묘사한 권 PD는 참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인 듯하다. 수능이 끝난 뒤 교회에서 뮤지컬을 연출했고, 대학시절엔 고교 후배들의 연극을 다듬어 주었고, 군 복무 중에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우물 파주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은사님은 권 PD를 “제자라기보다 젊은 벗”이라 불렀고, 이런 그가 ‘오늘의 유머’에 올린 웹툰 때문에 해고됐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MBC 경영진은 이미 정직 6개월을 받은 권 PD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했으니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형식논리에 갇혀 있는 듯하다. 똑같은 형식논리로, 정직 6개월이 부당징계였다면 이번 해고 조치는 더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재판으로 가면 부당해고 판결이 나올 게 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언론사 내의 표현의 자유는 일반 기업보다 더 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하지만 MBC 경영진은 일단 해고하면 임기 중에는 권 PD를 안 볼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격언을 실감케 한다. MBC 경영진은 자기 인생이 하루살이처럼 가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1월 28일 재심에서 해고 조치를 백지화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지 않겠는가?

MBC 경영진은 짧고, PD의 연출 인생은 길다. 권 PD는 시청자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는 게 사명인 예능 PD다. “삶의 비극적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 진정 유쾌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 작금의 시련은 권 PD가 더욱 뛰어난 예능 PD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사랑하는 후배 권성민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과 함께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보낸다.  

1954년, 소련의 인민예술가 아람 하차투리안(1903~1978)이 음악을 만들고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하여 발레 <스파르타쿠스>가 탄생했다. 이 발레는 웅장한 남성 군무가 장관이다. 크라수스 군대의 도도한 춤과 노예들의 고통스런 몸짓에 이어 검투사 대결 장면이 펼쳐진다. 향락과 사치에 빠진 로마 지배층은 노예끼리 결투를 시키고, 이를 즐겼다. 노예들은 자기가 살려면 동료를 죽여야 했다. 이기면 당장은 살아남지만 언젠가는 모두 죽을 운명이다. 동료를 찔러 죽인 스파르타쿠스는 더 이상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반란을 결심한다. 스파르타쿠스의 고통스런 독무에 이어, 쇠사슬을 끊고 떨쳐 일어나는 노예들의 군무가 이어진다.

   
 
 

 

발레 <스파르타쿠스> 1막
(2008 볼쇼이 공연, 파리 가르니에 궁전) 
http://youtu.be/v0VACj3bKCU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라고 정의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순간 자유인으로 거듭났다. 1950년, 미국의 작가 하워드 패스트는 소설 <스파르타쿠스>에서 이렇게 썼다. 

“바로 얼마 전, 이 사람은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 그는 5만 명에 이르는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그 군대는 역사상 최강의 군대다. 쉽게 말해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군대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군대가 있었다. 그 군대들은 국가, 도시, 전리품, 권력, 특정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싸웠다. 그러나 여기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있다.” 

스파르타쿠스(BC 109 ~ BC 71)는 BC 73년, 70여명의 노예들과 함께 카푸아 근교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 로마 각지의 농노와 광부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로마 정부가 보낸 진압군을 두 차례나 격파하고 남부 이탈리아를 점령하여 로마 지배층을 공포에 떨게 했다. 로마군에게서 노획한 무기로 더욱 강력해진 그의 군대는 최대 12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BC 71년 원로원이 파견한 크라수스의 대군에게 패배하여 죽음을 맞았다. 이때 병사 6,000명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됐다고 하니, 예수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이었다. 

발레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무장 봉기는 성공하는 듯 보인다. 크라수스와의 첫 대결에서 그를 생포한 것.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는 크라수스를 용서하고 풀어준다. 자존심이 상한 크라수스는 복수를 꿈꾼다. 아내 에기나가 간계를 꾸민다. 여자들을 이끌고 스파르타쿠스 진영에 잠입, 반란군들을 유혹하여 술을 먹이는 것이다. 모두 환락에 취해 넋을 놓은 틈을 타서 진압군이 반란군 캠프를 급습한다. 반란군은 무자비하게 살육되고, 스파르타쿠스는 수십 개의 창에 찔려 숨을 거둔다.

   
 
 

 

발레 <스파르타쿠스> 3막
http://youtu.be/vjYilf6cwwU

 

 

 

 

애도의 합창이 울려 퍼지면 프리기아가 비탄에 잠겨 처절하게 춤춘다. 눈물을 억제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다. 죽은 스파르타쿠스의 가슴에서 프리기아가 꽃처럼 피어난다. 현실에서는 패배했지만 스파르타쿠스의 이상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프리기아는 스파르타쿠스가 사용했던 방패를 그의 가슴에 얹어 준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리 평등하지는 않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샅샅이 털어가고, 이에 항의하면 종북 딱지를 붙여 침묵을 강요한다. 갑질이 전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져가고, 사람다운 사람은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스파르타쿠스는 시대를 너머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켜 왔다.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은 앞으로도 이 비극적인 발레 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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