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얼핏 본 옆자리 여고생의 수첩에 적힌 내용. ...화룡점정-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함 / 우이독경-아무 소용이 없는 일 / 화중지병-불가능한 일... 

시험 때문에 사자성어 2백 개를 외우는데 뜻도 모르는 말이라 답답하다고 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을 물었더니 안다는 듯 고개 끄덕였다. ‘우이’가 뭔지 물었다. ‘우이’도 ‘독경’도 몰랐다. 총명하게 생긴 그 여고생은 ‘우이독경’이 ‘쇠귀에 경 읽기’ 뜻인 줄도 모르면서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외우고 있었다. 

우리 교육이, 기성 사회가, ‘어른’들이, 어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실례를 범하고 있는지 크게 각성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필자만의 생각일까?  

한자먹통 세상 만들었으면 한자어를 안 써야 한다. 한자 섞인 단어는 다 한글말로 고쳐야 옳다. 비행기는 날틀, 남녀는 사내계집 하는 식으로 고치면 되리라. 말이 되는가? 한자를 잊은 대부분 시민들 앞에 유식한 정치인들이 고사성어 화두 던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지, 정작 그들만 모르는 듯하다. 

낙망 속에서나마, 뒤늦게 한자교육 이슈가 도처에서 떠오르는 것을 주목한다. 그러나 한자 없이 지내온 수십 년의 습성이 관성이 되어 되레 발목을 잡는 상황도 보인다. 이전투구,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식인은, 다음 시대의 주인인 어린 세대들에게 최소한이나마 예의를 지켜야 한다.    

(국어) 선생님들조차도 대부분 ‘우이독경’과 ‘쇠귀에 경 읽기’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의 상관관계와 같은 말뜻의 원리를 딱 부러지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떤 선생님은, 짐작은 하지만 자신이 없으니 얼렁뚱땅 지나친다고 했다. ‘몰라서 그렇다’는 고백이다. 40대 후반인 그는 ‘나도 (한자 없는) 그런 교육의 피해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 억울함을 왜 말하지 않지? 

요즘 유행인 ‘인문학’의 첫 계단이자, 바탕이 실은 바로 이 대목이다. 말과 글이 희미해져 사물 즉 세상 모든 사건(일)과 물건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공부가 사람의 본디를 향하는 바른 가르침이 되랴? ‘논어에서 배우는 처세학 한 수’ 이런 따위를 인문학이라고 사기 치며 돈벌이에 나선 사이비 지식들이 과연 사회를 ‘힐링’할까? 

‘화룡점정을 찍는다’는 기자들의 한심한 여러 글들을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말과 글 제대로 아는 것이 글쓰기의 최소한의 밑천이다. 또 ‘지식의 방법’ 제1조다. 내 글이라야 한다. 

밑천 없이 ‘게임’에 뛰어든 이는 의당 공부 다시 해야 한다. ‘마이 웨이’ 아님을 직시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사례들도 많다. 독자(사회)와 언론과, 스스로를 위해 냉정히 판단할 일이다. ‘따붙이기’는 글쓰기가 아니다. 표절은 도둑질이다. 자신에게 묻자, “내가 기자냐?”고.

‘용을 그리고[화] 눈동자[정]를 찍는[점] 것’이 화룡점정이다. 이것이 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함’이라는 뜻이 되는지의 궁리가 말과 글의 공부다. 인문학의 시작점인 ‘문’인 것이다.

일부의 황당한 화룡점정 활용법은, 말의 뜻을 모르면서 그러려니 하는 느낌만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맞을 수도 있고, 말의 (속)뜻 모르니 틀려도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글 쓰는 이가 할 말은 아니다. 세상 바루고자 한다면 말글부터 새삼 배우자. 안 그러면, 바로 그 ‘화중지병’(그림의 떡) 된다. 이 얘기는 ‘우이독경’일까?

< 토/막/새/김 >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장
 

사는 보람 재충전하고 세상 도전의 용기를 내려는 이들로 ‘힐링강연’마다 북적인단다. 기자되려고 ‘기자학교’나 강연에 자주 등록한다는 젊은이도 봤다. 좋은 인생이나 글을 짓기 위해, 멋진 직업 얻으려고 성공한 인사들의 ‘설계도’를 얻고자 함이겠다. 유행이라고들 한다. 다만, 여러 번은 시간낭비 아닐까? 계속되면 중독이다. 몸소 읽고 쓰고 말하라. 생각하라. 자신을 다 던지라. 어떤 설계도도 내가 소화하지 않고는 자양분이 아니다. 때로 스마트폰을 끄면 비로소 보일, 귀한 당신을 기뻐하라. 하나 더, 사전을 늘 펴면 문자가 다시 보일 터. 화룡점정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