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둘을 위한 밥을 차렸다. 정성껏 장을 봐다 썰고 지지고 달달 볶았다. 다 남의 남편들이 먹을 밥이다. 몇 번 더 차릴 것 같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하냐 하면, 그 남의 남편들이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 위에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 김정욱 씨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시사 팟캐스트 <김남훈의 과이언맨>에서 쌍용차 특집 방송을 하게 되어 <한겨레> 허재현 기자와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씨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말미에 가장 궁금한 것은 ‘그래서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였다.  

   
지난해 12월 23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뚝위에서 농성중인 이창근, 김정욱 해고노동자에게 올려진 누룽지 두 그릇과 반찬을 배경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사진=이창근 씨 페이스북
 

자본주의 틀 아래 살면서, 나는 늘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돈 만원 던지고, 내 트위터에 알티 몇 번 하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한 번 누르고 할 일 다 한 듯 마음이 편해지는 간편한 연대의 남루함도 늘 경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늘 잘 놀다가도 어떤 이들을 생각하면 왈칵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것이 연대라고 믿는다. 그동안 내 힘겨움에 휩싸여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래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굴뚝밥상’에 제일 마음이 갔다. 최근 일 년 정도 지방의 어느 대안학교에서 주방 봉사를 하고 있는데, 밥 해먹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낯 안 나고 품 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던 차 밥 차릴 거리가 있다기에 기꺼이 그걸 하기로 했다. 굴뚝 위의 두 사람이 먹을 두 끼 식사를 매일매일 밧줄로 달아 올리는데, 해고자 가족이 그 밥 차림에서 일주일에 하루 한 끼라도 놓여나도록 토요일 저녁 식사를 차려 배달 가는 것이 ‘굴뚝밥상’이라 했다.

당번 일정은 2월 초까지 비어 있었다. “그럼 모조리 제가 가죠 뭐. ” 구정이 끼어 일손이 달릴 때 낯 좀 나려는 수작 반, 하루빨리 협상이 해결되어 두 사람이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 고공에서 받는 마지막이자 축하 밥상에 당첨되어 보자는 수작 반이었다. 그러면 맥주라도 콸콸 부어 올릴 텐데. 물론 죄다 얄팍하고도 절절한 희망사항이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평택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 라고 말하자마자 기사님이 “아, 그 데모하는 데요? ” 라고 받는다. 2009년에 와 본 평택 공장과 풍경은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장기투쟁 현장의 어딘가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은 어디나 비슷했다. 2008년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뼈와 가죽만 남은 김소연, 유흥희 조합원을 보며 사람이 백 일을 굶었다고? 하고 정신이 멍해지던 기분은 까마득한 굴뚝을 올려다볼 때 다시 찾아왔다. 사람이 저 위에 있다고? 한 달이나 넘게? 2009년 이맘때의 용산 풍경도 같았다. 저기 사람이 있다고? 이 초현실주의적인 광경을 극복하려면 조금 더 불편하자. 그리고 함께 가자. 그게 어디냐고? 어디든, ‘그 데모하는 데’로. 나는 밥을 하련다, 당신은 떡을 써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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