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경미씨가 항소심에서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고 황유미, 이숙영씨에 이은 세 번째 사례이다. 김씨 가족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등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이종석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김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2013년 서울행정법원 제1재판부도 김씨를 산재라고 판단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했다. 

재판부는 “사실관계 및 증거에 의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김씨는 업무수행 중 벤젠 등의 유해물질과 전리방사선 등에 노출됨으로써 급성골수성백혈병이 발병해 사망하였거나 적어도 위와 같은 노출이 발병 및 이로 인한 사망을 촉진한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된다”며 업무수행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여러가지 사정’ 에 대해서는 “식각작업 중 벤젠에의 노출, 전리방사선에의 노출, 포름알데히드 등 여러 유해화학물질에의 노출, 비정상적 작업환경 등에서의 노출, 야간 교대제 근무로 인한 과로 스트레스의 영향 등”을 들었다. 벤젠과 포름알데히드는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며 국제암연구소(IRAC)에 따르면 야간 교대 근무 또한 2급 발암물질이다. 

   
▲ 반올림과 고 김경미씨의 유가족 등 10여명이 지난 2013년 10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김씨는 1980년생 여성으로 지난 1999년 4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4년 8개월간 2라인 및 3라인에서 식각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다 2004년 퇴사했다. 식각공정이란 화학물질이 담긴 수조에 반도체 판을 담갔다가 꺼내는 업무로 ‘퐁당퐁당 설비’라 불린다. 앞서 산재를 인정받은 고 황유미, 이숙영씨도 이 업무를 담당했다. 

퇴사 이후 김씨는 2008년 4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9년 11월, 1년 7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만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김씨는 아이를 갖는 과정에서도 유산과 불임을 겪었다. 김씨 유가족은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반올림은 “정부와 법원을 통해서도 속속들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과거 모든 작업환경을 그대로 밝혀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사실관계와 증거를 토대로도 삼성의 안정보건관리가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 중대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것에 대해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김씨의 남편 강아무개(39)는 26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1심 판결 이후 근로복지공단이 3~4시간 남겨두고 기습항소를 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은 두 번 모두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원에서는 두 번 모두 승소했으니 이제는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이 어떤 심정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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