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을 둘러싼 언론 보도의 몇 가지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말정산이 세금 폭탄이 됐다며 분노하는 보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둘째, 돌려받는 금액이 줄어들거나 토해내는 경우도 있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부자들의 부담이 더 크기 때문에 부자 증세라는 시각도 있다.
셋째,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비판도 많다. 차라리 증세를 한다고 밝히고 하라는 조언도 있고 이것도 저것도 다 싫고 그냥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결과 이걸 서민 증세로 봐야 할까. 부자 증세로 봐야 할까. 부자 증세니까 괜찮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자 증세도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둘째, 만만한 게 월급쟁이냐는 불만도 있다. 부자들에게 세금 더 걷는 것도 좋지만 애초에 법인세 먼저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셋째, 결국 세금을 늘릴 것이냐 복지를 축소할 것이냐 가운데 선택이 필요하다.

조선일보는 이번 연말 정산을 “고소득층에 대한 실질적인 증세”로 규정한다. 사설에서 “복지를 위한 증세를 공론화하거나 무리한 복지 확대 정책을 조정해 세금 부담을 완화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결국 증세 보다는 복지 축소 쪽에 무게를 싣는 보도다. 이 신문은 부자 증세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약속 위반이라는 이야기다.

한겨레는 차라리 제대로 증세를 하라는 입장이다. 한겨레는 “소득공제 제도는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돌아가는 혜택이 더 커 소득 재분배 기능을 악화시킨다”면서 “법인세 인상부터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타당하지만 소득세 인상도 피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쟁점을 정리한 바 있다. 사설에서는 “직장인들의 박탈감 해소를 위해서도 법인세 손질은 피할 수 없다”고면서 “증세 쪽으로 개편 방향을 잡고 법인세 인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득공제가 줄거나 거꾸로 토해내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보편적 증세의 큰 방향에서는 맞다는 게 오건호 위원장의 주장이다. 물론 법인세를 올리는 게 먼저라는 주장도 맞지만 법인세와 별개로 소득공제의 역진성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 사진은 납세자연맹의 퍼포먼스. 오 위원장은 납세자연맹이 과도하게 조세저항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다른 신문들의 논조는 어정쩡하게 걸쳐 있다. 노골적으로 복지 축소를 주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증세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복지는 좋지만 증세는 싫다는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스탠스다. 동아일보는 “최경환 부총리는 자리를 걸고 ‘증세는 없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고 한국일보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은 ‘무리한 복지’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복지 비용을 감당하려면 증세를 피해갈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법인세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전제를 두고 있다. 이 신문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과 구간 조정으로 부자 증세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정부는 당초 세 부담이 늘긴 하나 과도하지 않다고 밝혔으나 고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의 부담도 예상에 비해 컸다”고 지적했다. 연말정산 개편이 세금폭탄이라는 문제의식을 대부분의 신문들이 공유하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왜 법인세를 강화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는데 당연히 법인세도 올려야 하지만 소득세 공제제도가 지닌 역진성을 개혁하는 건 이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추산에 따르면 소득 3450만원 이하는 세금이 줄고 3450만~5000만원은 변화가 없고 5500만~7000만원은 2만~3만원 정도 늘고, 7000만원 이상은 누진적으로 늘어난다.

오건호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전체 근로소득의 약 60%가 과세대상에서 빠지고 40%에 대해서만 소득세율이 적용된다”면서 “소득세에서 과세되는 소득은 직접세로 누진적 성격을 갖지만, 공제되는 60% 소득은 거꾸로 고소득자일수록 세금을 더 깍아 주는 역진적 성격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소득세를 포함한 재정정책이 공제에서 복지로’전환돼야 한다”는 게 오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소득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나라에서 무작정 증세를 하면 사실상의 서민 증세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선 소장은 “법인세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관련 세금에서 걷어야 할 세금을 제대로 안 걷고 있는 문제가 훨씬 크다”면서 “부유층에서 걷어야 하는 세금은 제대로 안 걷으면서 근로소득세 안에서만 형평성 맞추자고 하면 결국 봉급생활자 부담만 늘리는 세금증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선대인 소장은 오건호 위원장이 “공제를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한 데 대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집중적으로 돌아가는 공제 혜택을 줄여버리면 오히려 조세 형평성은 더욱 악화된다”면서 “법인세와 종합소득세 등 다른 세목과의 수평적 형평성을 크게 악화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로소득세 안에서 소득 계층 사이의 수직적 형평성을 달성하는 효과도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선대인 소장은 “근로소득세의 경우 소득 공제 혜택의 66.9%가 소득 2000만~6000만원 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면서 “근로소득세도 상대적으로 고소득자가 많은 혜택을 받기는 하지만 법인세나 종합소득세와 같은 극단적인 고소득층 편중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근로소득세가 그나마 조세지출상의 형평성이 가장 높은 세목인데 다른 세금을 그대로 두고 근로소득세 공제 혜택을 줄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그러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이번 연말정산 개편은 이명박 정부 때 부자 감세를 철회한 성격으로 이해하면 된다”면서 “세금 폭탄론은 수구 시민단체의 선동과 대다수 지식인들의 무지, 대중의 막무가내식 이기주의가 낳은 코미디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홍 소장은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을 인용해 선대인 소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홍헌호 소장은 “이명박 정부 때 연봉 5000만~6000만원인 근로소득자는 27만원의 감세 혜택을 받았는데 이번에 개편된 연말정산으로 10만~13만원 가까이 세금 더 내게 됐다”면서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이 대중에 영합해 조세 저항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홍 소장은 “고액 연봉자들은 세금 부담이 커졌지만 연봉 3000만원 이하는 세액공제가 추가 신설돼 세금 부담이 오히려 줄었다”고 덧붙였다.

첨예하게 주의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이번 연말정산에 적용된 세제 개편은 서민증세일 수도 있지만 부자증세 효과가 훨씬 크다. 13월의 월급은커녕 ‘쌩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부자들의 세금 환급을 줄이는 게 방향은 맞다. 당연히 근로소득세 뿐만 아니라 다른 세금도 손봐야 하고 재정지출 개혁도 절실하지만 문제가 많은 소득공제 제도를 그때까지 그냥 놔둘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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