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예전엔 대기업만 뜯었다면 이젠 어려워지니까 중견기업과 중소기업도 뜯고 심지어 사회적 기업까지 안 가리고 뜯더라. 내가 아는 모 선배는 장애인을 고용해 제과점 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홍보성 기사를 쓰고 회사에서 돈을 받아냈다는 얘기를 하면서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느냐’고 자조했다. 언론사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땐 정말 경악했다.”(전 A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대도시마다 혁신기업이라고 정부 지원받는 곳이 있다. 매출액이 50억도 안 되는 중소기업이어서 홍보비도 따로 없다. 그런데 이 기업 대표가 한 유력 케이블 경제방송의 광고 회유에 혀를 내두르더라. 방송에 3번 정도 나가면 나중에 코스닥 상장됐을 때 재미 좀 볼 거라며 광고비를 요구했다는데 이런 경우가 사실 비일비재하다.”(B경제방송 산업부 기자)

이현아(가명) 전 A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는 운이 좋게도 회사로부터 노골적인 기업 광고나 협찬을 위한 기사 요구는 거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고·협찬은 연차가 낮은 기자들보다 차장급 이상 기자들의 압박이 훨씬 큰 편이다. 하지만 경제지 등 산업부를 출입하는 기자 상당수는 ‘영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전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창업이 시대적 화두다 보니 지자체에서 밀어주면 조금씩 규모화 된 곳이 생겨나는 건 사실인데, 기사가 날 만한 곳이면 기사가 나간 후 광고국에서 전화가 간다”며 “문제는 내가 기사를 광고 목적이 아니라 미담 사례로 소개하려고 썼는데 회사가 나도 모르게 기사로 영업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말했다.

이 전 기자는 “내가 썼던 기사를 기업 요청으로 내리면서 광고와 바꾸었는데, 나중에 알았다”며 “어느 정도 연차가 올라가면 이런 것을 예상하면서 돈이 안 되겠다 싶으면 접는 기사도 많다”고 말했다.

평기자들도 회사가 주최·주관하는 행사 협찬에 동원되기도 한다. 주요 경제지들과 인터넷 매체에서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각종 포럼이나 시상식의 주요 참석자를 초청하는 일은 각 출입처 기자들 몫이다. (관련기사 :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 저널리즘의 미래③ 생존과 저널리즘의 위태로운 줄타기)

C경제신문 경제부 기자는 “회사에서 매년 큰 규모의 시상식을 개최하는데 정부 관계자를 초청하는 일은 출입처 기자들이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한다”며 “정부나 기업에서 오는 사람들의 경우 참석만 하는 게 아니라 협찬도 당연히 따라오기 때문에 기자들도 회사의 요구를 관례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D인터넷매체에서 금융부처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기업도 정부에서 누가 참석하느냐에 따라 자기들이 행사에 보내는 임직원 ‘급’과 협찬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사적으로 협찬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며 “여러 계열사를 가진 금융그룹의 경우 협찬비도 맞춰서 각각 오기 때문에 출입처와 협상하는 기자들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이 같은 언론사 행사에 기업이 부담하는 협찬금은 평균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 단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기업 입장에서 언론사 협찬은 매체 영향력이나 광고 가치와 상관없이 집행하는 것이어서 광고 효과는 못 보고 언론에 보험을 드는 성격의 지출”이라며 “언론사별로 거의 대동소이한 행사나 시상식이 너무 많고 기업 브랜드 가치나 성격과 관련 없는 협찬 요구도 많은데 한번 시작하면 세금 걷듯이 오다 보니 기업에선 매우 곤혹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기업 홍보실 입장에서는 언론사의 협찬 요구만큼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 것이 기업 회장이나 대표 등 오너(owner)와 관련한 기사이다. 한 대기업 홍보실 임원은 “오너 관련 기사는 무조건 광고 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며 “오너도 신문을 보는 데 그걸 그냥 두면 난리난다. 더군다나 오너 일가와 관련해 핵심적인 내용이면 억(億)을 주고라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의 또 다른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도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에 오너 이름이 들어가면 상당히 부담스럽고 기사와 상관이 아주 없지 않을 때도 제목을 그런 식으로 뽑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지고 기다리거나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 올렸다고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기사 내용이 아예 악성이면 기자에게 전화해서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설명하고, 해석의 문제일 경우 어떤 의도로 썼는지 물어 본다”며 “요즘은 회사 사정상 무대응하기보다 굳이 안 휘둘리고 설명하는 선에서 보고하고 끝내지만 경영진의 마인드에 따라 홍보팀장이 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 홍보실 담당자들과 광고주들에 따르면 일부 인터넷 매체들은 포털 검색을 무기로 기업을 압박하기도 한다. 광고비를 쥐고 있거나 위기대응 체계가 잡혀있는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포털에 부정적으로 노출되면 타격을 받는 중견기업은 이들 매체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한 중견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사명을 검색했을 때 네이버에 노출되면 CEO가 바로 신경을 쓰니까 포털에 하나만 올라와도 부담스럽고 모니터링을 자주 해야 한다”며 “만약 정부 시책을 따라가는 데 사각지대에 있거나 평탄하게 잘 운영되던 회사의 회장과 관련한 부정적 내용의 기사가 포털에 올라오면 홍보 담당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혁 상무는 “모든 언론을 일일이 대응하지 못할뿐더러 포털에 기사는 내렸는데 SNS나 기자 블로그에는 그대로 남아있거나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매체도 있다”며 “포털도 제휴 평가 기준을 강화해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 부당하게 광고나 협찬을 요청하거나 어뷰징을 일삼는 문제 있는 언론은 과감히 퇴출해야 언론 환경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 상무는 “기업들도 언론 대응 원칙을 세우고 악의적 기사에는 아예 대응하지 말도록 주문하고 있다”며 “광고주들도 오프라인 신문으로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보는 독자층을 고려한 현실적인 신문광고 단가를 연구 중이고, 비정상적인 협찬이 아닌 브랜드 노출 중심의 광고로 가야 한다는 데 중지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고·협찬을 부르는 기사 유형 5가지

① 오너(owner·사주) 이름(사진)을 반드시 노출

언론이 기업 홍보실을 압박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다. 주로 해당 기업에 부정적인 기사 내용이나 제목에 기업 오너 이름이 포함되면 오너나 기업 임원들에게서 홍보실로 직접적인 압박이 들어온다. 실제로 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에 오너 이름이 들어가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기사 제목이 아니더라도 기사 내용 중 오너 사진이 들어간다거나 오너 리더십, 오너 일가 등과 관련된 언급만 해도 기업 입장에선 언론사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

② 기업 관련 부정적 기사 반복적 우려먹기 

쉽게 말해 이미 맞아서 아픈 곳이지만 언론이 보도를 계속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기업 입장에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광고나 협찬으로 ‘입막음’ 할 수밖에 없다. 과거 다른 매체에서 나갔던 부정적 내용의 기사를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베껴 쓰거나 자매지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도해 기업을 계속 압박하기도 한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아님 말고’식 추측성 보도나 아직 기업비리와 관련해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범죄 집단’인 것처럼 단정 짓는 기사도 있다.

③ 털어서 먼지내거나 정권에 밉보이게 낙인찍기

해당 업계 또는 기사를 쓸 당시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기업을 비판하는 식이다. 국세청 세무조사와 직결되는 탈세 의혹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과징금을 받을 수 있는 담합 관련 기사, 금융감독원에서 문제 삼을 만한 내용 등을 찾아내 기업을 긴장하게 만든다. 특히 전문지 중 일부는 특정 업체나 제품에 부정적인 기사를 계속 쓰면서 관계부처·기관에 직접 민원을 넣기도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 등 정부가 역점을 둔 국정과제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기업 CEO를 예민하게 반응하게 하는 기사 중 하나다.

④ 경영관련 데이터 왜곡해 깎아내리기

기업에 비판적인 데이터만을 취사선택해 보도하는 기사 형태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기사는 표면적으론 매출액이나 당기순이익 등 경영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치 비교를 통해 객관적인 기사 형식을 보인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이나 전망보다는 부진한 실적을 부각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있다.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고도 고배당 잔치를 했다거나 임직원 고액연봉 관련 기사에서 종종 발견된다. 경쟁업체의 부정적 분석이나 전망을 ‘업계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시장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⑤ 광고형 (특집)기사

기업 이름과 브랜드를 노출하는 정상적인 신문광고비 집행이 아닌 협찬 성격의 집행비가 증가하면서 언론의 기업 홍보성 기사는 이미 관행처럼 굳어졌다. 실제 중앙일간지를 포함한 많은 신문이 별지 섹션을 두고 ‘광고형 기사’로 지면을 채워나가고 있다. 통상 신문사 광고국이 광고주와 광고 계약을 맺는 식이라면 광고형 특집 기사는 편집국에서 기업에 직접 협찬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선 이런 기사로 광고 효과를 볼 때도 있지만 요청하는 매체와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홍보성 기사는 신문윤리에 어긋나고 신문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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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03)
○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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