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최승호 PD는 화면 속 최승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4년 전 최승호는 ‘꿈’을 말하고 있었다. 

“‘정말 다른 거 생각 않고 프로그램만 열심히 하겠다’ 저는 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봅니다. 우리 PD들이 서로 돕고 배우면서 가꿔왔던 그 꿈을 (윤길용) 국장님은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깬단 말이죠. 굉장히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국장님은 부인하시지만 단언하건대 PD수첩을 망치기 위해서 지금 그러시는 거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16일 오후 5시 서울고등법원 재판정 305호. MBC 기자·PD에 대한 징계의 부당성을 다투는 징계무효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2011년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의 ‘현장PD 퇴출조치’(최승호 포함)에 항의하는 자신의 모습을 최 PD는 말없이 응시했다. 

   
▲ MBC PD들이 지난 2012년 파업기간 중에 만든 ‘파워업 피디수첩2탄 – 피떡수첩’.
 

원고 대리인 신인수 변호사는 해고 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2012년 파업 과정이 담긴 ‘파워업 피디수첩2탄 – 피떡수첩’(피떡수첩은 MBC PD들이 파업기간 중에 만든 프로그램)을 재판정에서 틀었다. 영상 속 MBC PD들이 경영진 행태를 고발하는 동안 최 PD는 두 손을 모은 채 화면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선고 전 마지막 재판이었다. 최승호 PD를 포함한 해직 언론인 6명(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 최승호)은 16일 모두 재판정에 참석했다. 선고는 오는 4월 1일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방송 공정성을 위한 파업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해직 언론인 손을 들어줬다. 그로부터 1년 해직 언론인들은 여전히 MBC와 법정 공방 중이다.

이들은 지난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됐다. 이 가운데에서도 최 PD는 영문도 모른 채 해고됐다. 당시 MBC는 “불법파업에 참가해 무단결근을 하고 여의도 사옥 안에서 피케팅을 한 것” 등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었다. 최 PD는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 앵커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MBC 복귀를 바라고 꿈꾼다.

이날 재판에서 피고 대리인 측은 ‘MBC노조는 정치노조’, ‘파업 목적은 진보·노동자 세력의 정치화’ 등 색깔론으로 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 본부장 이성주)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MBC가 노동조합을 비판하는 논리다. 

   
▲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MBC 해직 언론인 6명(좌측부터 강지웅 이용마 최승호 정영하 박성호 박성제)이 16일 재판을 위해 서울고법에 들어서고 있다. ⓒ 언론노조 MBC본부
 

피고 대리인 장상균 변호사는 “노동조합 파업 목적은 사장 퇴진이었고 방송 공정성 보장이라는 구호는 배경화면일 뿐”이라며 “사장 퇴진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장 변호사는 “이렇게 지능적인 파업은 없었을 것”이라며 “(MBC 기자와 PD 등과 같은) 인텔리 화이트칼라 계층은 (블루칼라 계층과 달리) 모욕, 저주 등 심리적 타격을 주로 가하고 언어적 폭력을 가한다”고 밝혔다. 

피고 대리인 측은 이를 입증하려 파업 기간 MBC노조의 투쟁 영상이 담긴 자료화면을 제출했다. 이 화면에는 김재철 사장 집 주변에서 MBC노조가 시위를 하는 장면, 서울 여의도 MBC사옥 로비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장면, MBC노조가 보도국을 점거하는 장면, KBS·YTN노조와 연대집회를 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김재철 사장과 MBC노조 조합원들이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인근에서 충돌하는 장면도 있었다. 

   
▲ 신인수 변호사. ⓒ언론노조 이기범
 

반면, 원고 대리인 신인수 변호사는 “숱하게 노동 관련 사건을 맡았지만 MBC노조처럼 평화롭게 파업을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이들은 집행부가 해고돼도 인사위를 점거하지 않고 그 앞 복도에 앉아 집회를 했다. 단 한 번도 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고 대리인이 노조 폭력성을 트집 거는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신 변호사 목소리는 최후 변론에서 더욱 커졌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공정방송. MBC 언론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이다. 

신 변호사는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MBC 뉴스에는 뉴스가 없었다”며 “PD수첩에는 민감한 아이템은 일체 다루지 말라는 보도지침만 있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공정방송과 제작자율성은 기자, PD 언론인들에게는 근로조건”이라며 “헌법과 방송법에 따르면, 언론인에게 언론 자유는 직업적 소명이고 제작 및 보도 자율성은 회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신 변호사는 “피고 대리인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단순하고, MBC언론인들에 대해서는 ‘인텔리’라고 했는데 이와 무관하게 노동자라면 정당한 파업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PD도 최후 변론을 통해 “피고 대리인은 MBC노조가 정치노조라고 하는데, 2005년 PD수첩을 보면 이 주장이 거짓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며 “황우석 사태를 방송했을 때 MBC노조가 버텨주지 않았다면 방송은 없었을 것이다. MBC노조는 ‘공정한 방송을 내보내자’는 입장이었다”고 반박했다. 

재판은 오후 7시께 끝이 났다. 재판정을 나오며 박성제 기자는 “피고 대리인 논리는 MBC처럼 형편없다”며 “MBC가 원하는 것은 재판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오는 것을 어떻게든 늦추려는 것”이라고 했다. 최 PD와 MBC 해직 언론인의 꿈은 이뤄질까. 4월 1일에 알 수 있다.

최승호 PD 최후 변론. 

   
▲ 최승호 MBC PD. ⓒ미디어오늘
 

“2012년 노동조합 파업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년퇴직을 앞둔 선배들, 오랜 세월 부장과 국장, 본부장을 역임했던 선배들까지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노동조합 소속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 분들이 왜 참여했을까요? 김재철 사장의 MBC가 자신들이 몸담던 MBC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MBC 노동조합은 88년 첫 파업을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대변인 출신 황선필 사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방송을 짓밟았습니다. 그때 외친 ‘사장 퇴진’은 공정방송을 되찾자는 우리 구호였습니다. 그 당시 파업에 참여한 선배도 정년퇴직을 앞두고 2012년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함께 모여서 MBC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피고 대리인은 MBC노조가 정치노조라고 하는데, 2005년 PD수첩을 보면 이 주장이 거짓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황우석 사태를 방송했을 때 MBC노조가 버텨주지 않았다면 방송은 없었을 것입니다. MBC노조는 ‘공정한 방송을 내보내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우리를 해고한 선배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배들 가운데 진보정권 때 (MBC가) 편향적이라고 항의한 분이 있느냐’고. 단 한 분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도 노사 공정방송협의회를 통해 편향 보도를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게 노동조합이었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구성원 모두의 마음이 모였던 게 MBC였습니다. 그걸 알기에 선배들이 파업에 동참한 것이겠죠. 이것이 파업의 진실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