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의 경우엔 국익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돼 있는 결사·발언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속박했기 때문에 함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언제 어디서든 통치자나 지배세력이 판단하는 국익은 위험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 헌법이 종북을 해산했다’고 환호한 동아일보 소속 기자가 블로그에 쓴 글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는 동아닷컴 내 기자 블로그를 통해 지난 22일부터 일명 ‘종북몰이’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와 북한의 소니 해킹 의혹, 통합진보당 해산 등 최근 북한과 관련한 4편의 글을 올렸다.  

주 기자의 글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그가 동아일보 기자이면서 보수언론의 논조와 상반되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의 주 기자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고 지난 1998년 탈북해 2002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동아일보에는 2003년 공채로 입사해 현재 국제부에서 북한 관련 기사를 주로 쓰고 있다.

주 기자는 민감한 주제의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사회 여론이 너무 우측으로 쏠려가니까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 생각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최근 신은미 관련 사건은 그렇게 공격받을 내용이라고 보지도 않거니와 안보 뉴스 상품으로 만든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주성하 기자의 동아닷컴 블로그
 

“TV조선 ‘신은미 북한 찬양’ 보도는 종북 마녀사냥의 대표적 사례”

그는 지난 22일 블로그에 올린 ‘신은미 콘서트와 2014년판 마녀 사냥’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글에서 “나는 연말에 이슈가 됐던 사건들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며 “물론 나의 견해에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이번에 연재하려는 글에 대해 더구나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지만, 내가 독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글을 쓰겠다고 생각이 들면 그건 붓을 꺾어야 할 때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른바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한 토크콘서트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2014년 현대판 종북 마녀사냥의 대표적 사례라 생각한다”며 “소규모의 청중을 둔 동네 한구석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무시할 수도 있는 별것도 아닌 강연보다 수백만 명이 보도록 몰아간 마녀사냥이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보고, 언론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주 기자는 신씨가 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진 “북한을 지상낙원이라며 찬양했다”는 TV조선 등의 보도에 대해 “TV조선의 화재 신고를 하듯이 당장 숨넘어갈 듯한 특유의 목소리를 가진 남성 앵커가 다급하게 보수층에 SOS를 보내자 보수층이 격동되기 시작했다”며 “수백만 명의 독자를 가진 보수 언론이 이런 식으로 담론을 잡고 몰아가면 적절한 균형이 이뤄져야 할 이 사회의 건강도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20일자 1면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관련해서도 주 기자는 지난 27일 ‘법에 의지한 통진당 해산, 그게 최선이었나’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을 통해 보수언론의 지나친 호들갑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이번 판결 이후 조선일보의 1면 제목은 ‘헌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였다. 역시나 딱 조선다운 제목이었다. 아니, 대한민국이 헌법이 나서기 전엔 그럼 무너질 위기였단 말인가. 국회에 북한을 찬양하는 몇 명이 있다고 한들, 통진당 추종자들이 몇만 명이 있었다고 한들 과연 대한민국이 위기였나. 그 정도에 흔들릴 나라면 지키지 않고 무너지는 게 맞지 않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동아일보 논조도 조선일보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 기자의 비판에서 동아일보도 자유롭지 못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회사 내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예고했던 4편 중 마지막 글에서도 그는 “그럼 왜 (동아일보) 신문 주장은 늘 그렇게 나오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설명도 길고, 또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 동아일보 20일자 사설
 

“통진당 해산은 박정희 시대에나 있을법한 무지막지한 판결”

물론 그가 개인적 의견(네이버 등 포털뉴스에는 동아일보 기사로 표출된다)을 표명하는 데에는 소속된 매체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대로 “동아일보는 밖에서 보는 것만큼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고 주장의 다양성 정도는 용인되는 곳”이었다면 대중들이 ‘생뚱맞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주 기자는 ‘탈북’ ‘동아’ 기자라는 편견을 깰 만큼 “헌법 판결로 통진당을 해산한 것은 박정희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무지막지한 국익 우선식의 판결”, “우리 사회가 앞으로 광화문 한복판에서 공산주의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당이 나와도 괜찮다고 본다”, “이정희가 앞으로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면 유권자들은 당장 대한민국이 무너지기라도 하듯이 ‘종북박멸’의 광풍을 만드는 세력이 더 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유권자들의 뜻까지 국익에 위험이 된다는 잣대를 들이대며 법으로 땅땅 가로 막을 순 없다”는 등의 (동아일보 독자들에겐)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어찌됐든 헌법보다는 인권을, 국익보다는 사상과 결사의 자유를 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기자가 동아일보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그가 일축했듯이 앞으로도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동아일보 기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런 주장이 동아일보 지면에도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새해엔 세상이 편 가르기와 몰아가기, 의혹에 근거한 비난들이 줄어들고 함께 공존하는 상식적인 대한민국이 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그의 말에 ‘좋아요’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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