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재벌 2세가 노동자를 야구 배트로 폭행하고 맷값을 수표로 지불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최철원은 SK그룹 창업자인 최종현의 조카이며, 현 회장 최태원의 사촌 동생이다. 물류회사 M&M 대표를 지낸 그는 2010년, 회사 합병 때 고용 승계 문제로 항의하던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 구타하고 맷값이라며 2천만원을 줬다. 이 일은 돈으로 세상을 사는 젊은 세습 자본가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져 공분을 일으켰다. 사건이 드러난 뒤에, 그가 평소에도 회사 직원들을 구타하고 위협하는 행각을 벌였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최철원 사건은 여러 면에서 조현아 사건과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재벌가 출신으로 기업 경영에 관여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종 취급하는 수퍼 갑질의 행태를 보이다 무리수를 두어 사법 처리 대상이 되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최철원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끝났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최철원 씨(왼쪽)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오른쪽). ⓒ 연합뉴스, 노컷뉴스
 

사건 이후 최철원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으로 기소되었다. 2011년 1월 재판에서 검찰은 징역 3년(피해자와 합의하면 2년)을 구형했다. 다음달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4월에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 재판장 양현주)는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 명령을 함께 내려, 실형을 면제해 주었다. 재판부는 첫 공판이 열린 날 바로 선고를 내려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한 사실을 고려했고, 당일 선고가 형사소송법상 원칙이며 그렇게 판결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철원이 집행유예 판결로 실형을 면하고 재판이 일단락되자, 그로부터 13일 만에 그에게 두들겨맞은 폭행 피해자 유모씨를 기소했다. 업무방해와 일반교통방해 혐의였다.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부장 박철이다. 그는 이듬해 SK건설 전무급 임원으로 영입되었다. (이 때 그가 최철원 사건 담당 검사라는 설이 돌았으나, 최철원을 기소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부장 이기석이다.) 박철의 SK 영입과 관련한 배경에 대해 쓴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박철 전무는 부장검사 시절 최철원씨가 폭행 혐의로 구속된 후 폭행피해자였던 화물차 운전기사 유 모씨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해 사회적 비난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돌파력(?)을 보여준 바 있다. 재계에서는 박 전무의 이런 전력이 SK그룹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강한 인상을 남겨 이번 영입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박 전무 영입배경을 박 전무의 인맥과 연관짓는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인사에 대해 재계 주변에서는 SK그룹 윤진원 부사장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윤 부사장은 박 전무와 마찬가지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이며 박 전무의 고교‧대학 선배지간이다.

윤 부사장의 입사 시점은 지난 2008년으로,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는 최태원 회장이 대법원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확정 받은 것이 바로 2008년이다.

(중략)

한편 SK건설 관계자는 박철 전무 영입에 대해 “윤리경영 강화측면에서 영입을 했을 뿐 세간에서 회자되는 그룹과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2일, 최철원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출두할 때 상황은 다음과 같다.

최철원이 한 말이 잘 들리지 않는데, 아래 동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재벌 2세 기업인이 직접 야구 방망이를 들어 사람을 패고 그 값으로 돈을 주었다'라는 것은 '재벌 2세 임원이 비행기를 돌리게 하고 직원에게 폭언 폭행하고 내리게 했다'라는 것에 못지 않게 충격적이었고, 따라서 여론의 엄청난 질타를 받았던 사건이다.

그런데 최철원의 출두 장면 분위기는 조현아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우선 최철원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온다. 그는 포토 라인에 서서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사진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시간은 30여 초에 지나지 않아, 5분 가까이 붙잡혀 있었던 조현아와 차이가 난다.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하고 최철원이 자리를 떠날 때, 조현아 때와는 달리 그를 잡아채거나 가로막는 기자도 없었고, 사진기자들은 욕설을 하고 고함을 외치기는커녕,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수사 당국에 도착한 남자 최철원에게 기자들은 매우 얌전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울었던 여자 조현아에게는 악머구리처럼 달려들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4년 전에 비해 기자들이 더 사나와진 것도 아닐 테고, 최철원 사건에 비해 조현아 사건이 몇 배나 더 심각하고 충격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분명한 점은, 조현아와는 달리 반성하는 척하는 흉내도 내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던 최철원을 찍은 사진 중에, 사악한 마녀처럼 찍힌 조현아 사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철원이 구속되었을 때,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결국 최씨는 12월 8일 구속 수감됐습니다. 하지만 구속이 끝이 아닙니다. 최씨와 같은 기업인이 노동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씨의 행동에는 “임금을 주었으니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된다” “싫으면 나가라”와 같은 삐뚤어진 생각이 반영돼 있습니다. 어디 최씨 한 사람뿐일까요? 노동자를 고마운 파트너로 대하기보다 “돈 주고 쓰다 버리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한국의 노사문화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맞는 말이다. 불행한 것은,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달라지기만을 바란다면, 이러한 한탄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리라는 점이다.

조현아가 구속되거나 처벌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그리고 언론은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내놓을 것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은 그 양상을 달리한 채 계속 나올 것이다. 기자의 말처럼, 어디 최씨, 조씨 한 사람뿐이겠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처럼 인식되는 나라에서, 정치 사건을 맡은 검사는 정당으로 영입되고 재벌 사건을 맡은 검사는 재벌 기업으로 영입되는 나라에서, 국민은 분노만을 즐기고 소비한 뒤 곧 잊고 언론은 그런 일을 부추기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문 : http://deulpul.net/4061133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