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노름꾼>의 주인공 알렉세이는 작가의 분신이었다. 알렉세이는 도박빚에 찌들어가고 도스또예프스끼의 실제 모습이기도 했다. 실제 이 작품은 도박 빚 때문에 출판사에 9년 동안 노예 계약을 맺고 쓴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빚 때문에 가능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그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기도 했지만, 늘 가난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라는 도스또예프스끼 조차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써야했음에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그의 문학성에 찬탄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도 빚 때문에  100여 편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써야했다. 이런 빚이 예술가의 작품성을 높인다고 낭만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이 엄존할 것이다.

2014년 1월 8일 한 케이블 채널 프로에서 신동엽에게 “프로그램을 많이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작년에 말했던 사업 빚을 다 갚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세간의 궁금증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난처할 수 있는 질문에 곧 그는 대답했다. “공식적인 빚은 다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모르는 비공식 빚이 있다. 아내 모르게 비자금을 마련하려 한다”라고 했다. 그의 재치로 끝맺음은 유머러스하게 되었지만 그렇게만 여길 수 없는 면이 여전히 있었다.

신동엽은 사실상 빚을 갚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한 셈이다. 그것이 ‘19금’이든 ‘자신이 망가지든’ 상관이 없었고, 출연료 등급이 낮든 아니면 시청률이 저조한 마이너 채널이든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두고 연예관련매체들은 찬사를 보냈다. 그의 예능감의 부활과 다채로움에 호평이 쏟아졌다. 빚에 쫓겨 나락에 빠진 그가 생존에 몰린 채 분투한 흔적들인데 말이다. 원하지 않는 포맷이나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배제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빚을 진 것이니 누가 그를 두둔할 필요는 없었는지 모른다.

2012년 4월, 4·11총선에 나선 김용민 후보를 지지했던 예능인 김구라는 막말 발언 논란에 휩싸여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만다. 그는 당시 방송에 복귀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사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출연했던 JTBC <썰전>이 호평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지상파에도 복귀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아들까지 적극적으로 방송 출연을 시키며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지상파에 집중하던 것과는 다른 패턴이었다. 이후 그는 거의 닥치는 대로 출연한 셈이지만 평소에 돈을 강조하는 그의 언행을 생각할 때 그의 겹치기 행보는 이상하지 않았다. 실마리는 있었다. 그러나 그가 평소에 강조하던 아내의 빚보증은 그의 출연 행태에 따른다면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가 공황장애로 쓰러지고 난 이후 그가 그렇게 사력을 다해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바로 거대한 빚보증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구라를 강력하게 움직였던 동인 바로 빚이었던 것이다. 

   
▲ jtbc ‘마녀사낭’에 출연중인 신동엽과 jtbc ‘썰전’에 출연중인 김구라 ⓒ jtbc 홈페이지
 

신동엽, 김구라는 남을 웃기거나 스스로 울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는 본인들은 빚 때문에 울고 있었다. 도스또예프스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예능인들을 드라이빙하는 강력한 동인이 빚이라는 건, 색다른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 어떤 연예인들은 빚 때문에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광고에도 출연하고, 홈 쇼핑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토크쇼의 인생 스토리로 등장할 것이다. 그들이 볼모로 잡는 것은 시청자이며 팬들이다. 상품 소비에 돈을 써도 피해를 보아도 그것은 오로지 시청자와 팬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최고인기연예인들도 이렇게 빚에 허덕거린다면, 일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몸만이 아니라 영혼을 팔아야 하는 빚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연예인들이나 개인들의 선택에 따른 빚으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빚더미 공화국에 살기 때문에 빚으로 인한 고민이 없는 집이 거의 없다. 빚을 너무나 쉽게 권하는 사회와 환경은 바람직하지 않다. 빚을 당연시하는 풍조는 경계해야 하며 사채만이 아니라 빚 연대 보증이라는 전근대적인 제도가 악용되는 현실을 하루 빨리 타개해야 한다. 독일 금융회사 알리안츠에 따르면 한국이 아시아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개인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였다. 최근 개인·기업·국가 채무 임계치에서 최대 46%p를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채는 갈수록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2014년 11월,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가계부채가 1060조원을 넘었고, 개인회생건수가 10만 건을 한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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