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한 대가 쌩 지나가니, 하얀 천막 한 동이 날아갈 듯 요동을 칩니다. 하지만 이내, 뜨개질 하며 도란도란 나누는 엄마들의 이야기 소리가 차분하게 그 공간을 채웁니다.

성탄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어제(23일)는 오랜만에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농성천막에 다녀왔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고 서면 왼쪽에 보이는 천막에서는 항상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시민들에게 나눠줄 노란색의 추모리본 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날때마다 거기 끼어보고 싶었는데 못했다가 오늘은 큰 맘 먹고 슬며시 들어가 구석 자리에 앉았습니다. 뜨개질에 열중하느라 다들 저를 신경 쓰지 않아 다행입니다.

온풍기가 따뜻한 바람을 내뿜는 가운데, 오늘은 단원고 2학년 7반 허재강 군과 그 친구의 엄마들이 모여 털실로 가족들의 모자며 조끼를 뜨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따라 ‘언니’, ‘동생’으로 서로를 불러가며, 가르치고 배우면서 한땀한땀 완성해갑니다. “우리 남편 조끼에요. 맨날 밉다밉다해도 맨 먼저 만들어지는 건 남편꺼더라고요. 이런 맘을 남편이 좀 알아야할텐데^^” “나는 내가 입을 거 만들어요. 그게 제일 좋죠.” 

 

   
▲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농성천막의 노란리본 공작소에서 단원고 2학년7반 학생들의 엄마들과 함께 하는 시민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치열 기자 truth710@
 
   

▲ "나 이만큼 떴는데, 어때요?" "이야~ 잘떴네~!!!" "색깔 너무 이뿌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꼬마 모자를 만들고 있는 한 일반 시민.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때 들어온 농성천막 지킴이 영석아빠에게 한 엄마가 말합니다. “우리 목요일은 여기 못와요. 크리스마스니까 교회가야지.” 영석 아빠가 바로 대꾸합니다. “애들 살려주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머하러 가요?” 그 엄마가 다시, “그래도, (우리 아이 바다에서) 건져는 주셨쟎아?” 라고 맞받으니 영석이 아빠는 피식 웃고 맙니다.

“(하늘로) 올려보내 줄게 생겨서 화장장도 가야하고 아들 보러 하늘공원(납골당)도 가야하고, 29일은 또 병원 가서 검사 받아야해요. 소화도 잘 안되고, 잠도 잘 안오고... 여기 안 오고 안산 집에 각자 있으면 통 웃을 일이 없어요. 이렇게 모여서 뭐라도 하니까 한번씩 웃는 거지...”

그러던중에, 재강이 엄마가 핸드폰을 열어서 아들의 사진들로 만든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가수 이승환 씨의 노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영상에서는 돌잔치, 생일잔치,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재강이 사진부터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재강이의 친구들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한 장 한 장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사진 속의 재강이 엄마와 아빠는 몰라볼 만큼 젊습니다. 흐드러진 꽃밭에서 찍은 네 가족의 사진은 그대로인데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재강이를 만져볼 수 없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아들의 부재를 실감할 수 없습니다.  

 

   
▲ 뜨개질을 하다가 재강이의 영상을 보는 단원고 2학년 7반 한 엄마. 이치열 기자 truth710@
 

얼음 낚시하는 사진이 나오자, 재강이 엄마가 “올해 1월에 갔던 가족여행 사진인데. 저게 마지막 여행이었다니까” 했고, 옆에 있던 한 엄마는 “작년이겠지, 뭐가 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진은 올해, 2014년 1월 재강이네 마지막 가족여행 사진이 맞습니다.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그때만해도 재강이는 엄마 곁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난 4월 6일 이후로, 단원고 2학년 7반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2014년은 그만큼 모질고 길었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오후 5시가 되자 엄마들은 짜던 옷이며 모자를 가방에 담고 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천막을 나섭니다. 다음에 또 보자고,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라고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오늘 성탄 전야엔 광화문광장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각각 '별이 된 아이들과 함께 맞는 성탄', '시민과 함께하는 4.16 문화제'가 열립니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2014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밤에는 2015년 첫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세월호 참사 추모행사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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