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선방송에 재송신을 중단하면 시청자들이 유선방송을 끊게 될까.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 대가를 증분가치 비교 산정이라는 방식으로 추론한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 19일 미디어경영학회 세미나에서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등은 “유선방송 사업자(SO)들이 지상파 재송신을 중단할 경우 지상파 수신을 포기할 확률이 2006년에는 0.3이었는데 2013년에는 0.1로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김 교수는 SO들이 지상파 재송신으로 얻는 증분 가치를 수신료와 송출 수수료 수익을 가입자 수로 나누고 여기에 지상파 시청점유율을 곱해서 계산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얻는 증분가치는 광고 수입을 시청가구 수로 나누고 여기에 재송신을 중단할 경우 지상파 시청을 포기할 확률을 곱해서 계산했다. 각각 재송신으로 얻는 추가 가치를 계산해서 SO들이 얻는 가치가 크면 그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2006년 SO의 수신료 수익은 8438억원이고 홈쇼핑 송출 수수료 수익은 2386억원, 더 하면 1조824억원이었다. SO 가입가구는 1199만명, 1인당 수익은 9만248원이었다. 2013년은 수신료 수익이 1조1663억원,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7489억원, 더하면 1조9152억원으로 늘어난다. 가입가구 수는 1485만명, 1인당 수익은 12만9004원으로 늘어난다. 방송 3사 시청 점유율은 같은 기간 동안 45.3%에서 36.0%로 줄어들었다.

2006년의 경우 SO가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해서 얻는 증분가치는 9만248원에 지상파 시청 점유율 45.3%를 곱하면 4만864원, 월 3405원이 된다. 2013년에는 12만9004원에 36.0%를 곱하면 4만6416원, 월 3868원이 된다. 시청 점유율이 줄었는 데도 증분가치가 늘어난 건 수신료와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큰 그림을 보면 지상파 재송신으로 SO가 얻는 가치는 늘고 지상파가 얻는 가치는 줄어들었다.

   
증분가치 비교 방식에 의한 재송신 대가 산정 공식.
 

지상파가 얻는 증분가치는 2006년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수익 2조1510억원을 지상파 시청 가구 1833만명으로 나누면 11만7372원, 여기에 재송신을 하지 않았을 경우 지상파 시청을 포기할 확률 0.3을 곱하면 3만5212원, 월 2934원이 된다. 2013년에는 광고수익 1조7584원을 지상파 시청 가구 2046만명으로 나누면 8만5958원, 여기에 시청포기 확률 0.1을 곱하면 7163원, 월 716원이 된다.

2006년과 2013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TV 수신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SO에서 지상파 재송신을 하지 않으면 직접수신을 하거나 IPTV나 위성방송에 가입해야 하는데 2006년에는 IPTV가 지지부진했고 위성방송은 가격 부담이 컸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6년에는 SO에서 지상파가 나오지 않을 경우 70% 정도는 지상파 직접 수신을 하거나 위성방송으로 옮겨가 지상파를 보겠지만 30% 정도는 지상파 시청을 포기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2013년에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마무리되면서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기도 쉬워졌고 IPTV와 위성방송 가격도 낮아졌다. 무엇보다도 통신사의 결합상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SO 이외의 대안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는 SO에서 지상파가 안 나와도 90%는 IPTV나 위성방송으로 옮겨가 지상파를 계속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상파를 포기하는 비율은 10% 밖에 안 될 거라는 이야기다.

   
증분가치 비교 방식에 의한 재송신 대가 산정 공식.
 

결국 2006년과 2013년의 증분가치에 재송신 대가를 차감한 비율이 같다는 가정으로 재송신 대가를 추산하면 1406원, 방송 3사로 나누면 469원이 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때 블랙아웃 사태까지 빚으면서 재송신 대가 산정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 끝에 2012년부터 1가구에 280원씩 재송신 대가를 받고 있으나 400원까지 올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의 이론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다.

흥미로운 대목은 김 교수가 증분가치를 계산하기 위해 재송신 대가를 산정하기 이전인 2006년과 기준 시점인 2013년을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6년에 지상파가 얻는 증분가치와 SO가 얻는 증분가치의 비율이 그대로 2013년에도 재송신 대가를 차감한 이후에도 적용되도록 재송신 대가를 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2006년까지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SO들이 재송신 대가 없는 증분가치 비율에 암묵적으로 합의를 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내쉬 균형 이론을 적용할 경우 단순히 SO들이 얻는 증분가치에서 지상파가 얻는 증분가치를 빼고 이를 평균하면 재송신 대가를 산정할 수 있지만 지상파 방송과 SO 뿐만 아니라 IPTV와 위성방송 등이 얽힌 다양한 이해관계 충돌을 반영하지 못한다. 김 교수는 “증분가치 비교 방식은 기계적·인위적 형평성이 아니라 경험적 형평성을 제안하기 때문에 분쟁 해소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 대가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래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타결되긴 했지만 여전히 재송신 대가 산정은 유료방송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연합뉴스
 

이날 세미나에서도 다양한 반론이 제기됐다.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은 “지금까지 재송신 대가는 디지털 상품 가입자로 한정돼 왔기 때문에 증분가치도 디지털 가입자로 한정해서 산정하는 게 맞다”면서 “무엇보다도 2006년과 2013년을 단순비교하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지상파 재송신을 중단할 경우 시청점유율 만큼의 수익 감소가 있을 거라는 가정에 SO들이 공감할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SO들은 2006년의 경우에도 지상파 재송신이 중단될 경우 30%의 가구가 시청을 포기할 거라는 가정은 상당히 지나치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아날로그 상품이나 위성방송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서 지상파 시청 포기 확률은 훨씬 낮을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가정이 잘못돼 지상파가 얻는 증분가치가 줄어들지 않았다면 지상파들이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하기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이경원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에 비교 기준인 2006년의 SO 대비 지상파의 증분가치 비율을 지상파는 크게 잡으려고 할 거고 SO는 낮게 잡으려고 하는 유인이 있다”면서 “지상파의 증분가치는 경기변동에 연동되는 광고수입에 민감하면서도 미디어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지속적으로 둔화 추세인 반면 SO의 증분가치는 홈쇼핑 수수료가 늘어나면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데 2006년으로 단순 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청 포기 확률에 따른 증분가치 변화. 2006년에 시청포기 확률이 높고 2013년은 낮다고 가정하면 재송신 대가가 높게 산정되고 큰 차이가 없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낮게 산정된다. 김성환 교수 등의 주장은 지상파 입장에서 기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에 근접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김성환 교수 등의 연구는 증분가치 비교라는 계량화된 방식으로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의 균형 지점을 모색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애초에 전제가 잘못된 데다 핵심 변수가 자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에는 CJE&M 등이 제공하는 인기 채널이 공급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역설적으로 2006년보다 2013년에 지상파 시청을 포기할 유인이 많다는 반론에 더 들어맞는다.

지상파 재송신 중단이라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두고 재송신 대가를 산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재송신으로 누가 얼마나 더 이득을 얻느냐는 실체 없는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날 세미나를 비중있게 보도했지만 반론은 반영하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학계를 내세워 선제공격을 한 데 이어 SO를 비롯해 유료방송사들도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새해에도 재송신 분쟁이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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